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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3) 문학소설,에세이,시

쾌락독서 - 문유석

by DORR 2022.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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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독서 / 문유석

문학동네 / 시립도서관

 

 

개인주의자로 처음 만나 본 문유석 전판사, 현작가의 책이다. 독서에 관한 책을 읽다가 발견했다.

첫장을 읽는 순간부터, '범상치'않음을 느꼈다.

 

아, 이거 재미있는 책이겠구나.

 

재미있는 책이 어떤 책인가. 보통 산문과 에세이는 재미없다. 그럼에도 보는 이유는 뛰어난 사유를 글로 풀어주시는 김훈과 황현산 같은 저자들의 책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면 신경숙이나 이슬아 같이 아름답고 뛰어난 문장을 보는 즐거움이다. 하지만 문유석 작가의 책은 두 부류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거기에 위트와 유머가 있다.

 

예를 들어 신경숙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언급하며 '레 마눌'을 말했을 때는 현웃이 확 터졌다. 낄낄낄.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보지 못했다면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레 마누는 가상의 왕국, 여성이 지배하는 아르미안이라는 가상 국가의 최고 권력자인 여왕을 호칭하는 말이다)

 

유머와 위트와 해학이 있는 글은 항상 나를 매료시켰다. 그래서 내가 존 스칼지와 앤디 위어에 열광하며 과거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푹 빠져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도처에 유머가 깔려있다. 사뭇 개인주의자보다 훨씬 개인적이고 내밀한 글들이구나 싶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책은 개인의 독서취향에 관한 글이다. 독서 취향과 독서 역사라고 할까.

 

앞서 읽었던 이동진의 독서법에서 이동진 작가는 재미있어서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한다. 엄청 어려운 책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고 하지만 문유석 작가는 재미있는 책만 골라 읽었다고 했다. 이야기가 담긴 책, 혹은 관심 분야의 책. 그가 딱 좋아하는 문체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일명 책을 고르는 '짜샤이 이론'이다.

 

독서는 원래 즐거운 놀이다. 세상에 의무적으로 읽어야 하는 책 따위는 없다. 그거 안 읽는다고 큰일나지 않는다. 그거 안 읽는다고 안 될게 되지도 않는다. p.15

 

책을 많이 읽는다고 글을 다 잘 쓰는 것은 아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에는 여러 갈래가 있지만 내가 말하는 잘쓴다는 매력있고 눈에 잘 들어오며 이해가 쉽고 적절한 비유와 문체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48분 기적의 독서법으로 여러 권의 책을 낸 김병완 저자의 글을 보면 문체가 딱딱하고 지루하다. 매력이 없는, 그저 목적을 드러내기 위한 글이다. 그 글을 못썼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잘썼다고 볼 수도 없다. 잘 쓴 글, 잘 쓴 문장이란 독자들을 사로잡고 문유석 저자의 표현대로 팬티 개는 법이든 코털 가위 제조 업체의 흥망성쇠든 그 작가가 쓴 것은 뭐든 계속 읽을 것 같은 글이다.

 

그렇다면 어떤 글은 이렇게 매력적이고 어떤 글은 매력이 없을까. 다들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 말이다.

 

 
그저 삶을 바라보는 어떤 한 '태도'에 본능적으로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집착하지 않고, 가장 격렬한 순간에도 자신을 객관화 할 수 있고, 놓아야 할 때에는 홀연히 놓아버릴 수 있는, 삶에 적절한 거리를 둘 수 있는 그런 태도랄까. 원래 삶이란 내 손에 잡히지 않는 채 잠시 스쳐가는 것들로 이루어졌지만 그래도 순간순간 눈부시게 반짝인 다는 것을 알기에 너그러워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아주 드물다는 건 어린 시절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에 동경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p.37

 

그 차이가 문학을 얼마나 읽었느냐의 차이에서 나온다고 본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사람들도 문학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데,(특히 마인드,성공,자기계발 분야) 적절한 비유와 묘사, 의인화, 감정 표현 등으로 좀 더 내용에 공감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즉, 마음을 건드리는 글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은 문학을 많이 본 사람들임에 분명하다. 해서 이동진 작가와 문유석 작가의 글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남루하고 단조로운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시간, 다른 나라에서 사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내가 겪어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겪어보지 못할 것 같은 온갖 이야기들. 꼭 책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 걸까? 텍스트는 창작자를 떠난 후에는 어차피 수용자의 것이다. p.24

 

그가 어린 시절에 본 숱한 세계 명작. 굳이 꼼꼼하게 읽지 않고 줄거리 요약본만 읽었어도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볼 수 있고 이야기의 즐거움을 알았으니 충분하다고 한다.

 

하지만 선의도 탐욕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다. 성찰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면. 독서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세상에 쉬운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p.132

 

대학에서의 독서 생활은 다소 부정적이었다. 전부 하나가 되라는 분위기였고 사회과학책을 읽도록 했다. 다른 체제만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정답이라는 조급함은 독서가 아닌 학습을 강요했다.

 

1,2장에서는 은밀하고도 내밀한 저자의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의 호기심에 따른 책 취향을 유쾌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고, 3장의 계속 읽어보겠습니다에서는 성인이 되어 혹은 직장인(판사)가 되어 다소 묵직한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글이란 쓰는 이의 내면을 스쳐가는 그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 그래도 가장 공감을 받을만한 조각들의 모임이다. 나는 그래서 책이 좋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커피 두 잔 값으로 타인의 삶 중에서 가장 빛나는 조각들을 엿보는 것이다. p.183

 

좋은 글은 결국 삶 속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문장 하나가 비슷하게 뛰어나더라도 어떤 글은 공허하고, 어떤 글은 마음을 움직인다. p.184

 

책으로 놀기의 끝은 글쓰기이고 저자는 글쓰는 것이 재미있는 일이라고 한다.

 

나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은 채 남들 하는 대로, 관습에 따라, 지시 받는 대로, 논리 조직에 따라 성실하게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류 역사에 가득한 악惡의 실체였다. p.192

 

개인주의자에서도 보여주었던 세상의 진짜 모습을 향한 '쾌락'독서와는 다른 본능에 가까운 최소한의 윤리의식이 이끄는 독서에 대해서도 말한다.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한다. 지금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중립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면, 그건 나의 현명함 때문이 아니라 나의 안온한 기득권 떄문임을. p.195

 

이 문장을 읽으면서 얼마나 마음이 서늘했는지. 다시 한 번 감사함과 겸손함과 반성하는 마음을 갖는다.

 

삶은 언제나 책보다 크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것은 이 한 문장인 것 같다. 삶은 언제나 책보다 크다.

삶 속에서 책을 읽고 삶의 윤곽을 어렴풋이 따라가지만 결국 책읽기와 글쓰기 모두 삶의 큰 틀 안에 속해있고 세상을 알아가며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선택인 것이다.

 

이 책에의 많은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특히 재미있던 부분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주는 부분이었다. 마치 누군가 이야기 해주는 것 처럼, '있지, 전에 그 얘기 했던가? 내가 학교 다닐 때 말야...'이런식으로 전해지는 독서와 관련된 저자의 여러 경험들은 굉장히 재미있고 매력적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반장의 자율학습 반항 이야기, 두 딸들과 여행을 가서 느낀 여러가지 사건과 느낌들, 판사 시절 독서 모임에서 깨달은 이야기들. 모두 직접 겪은 에피소드들이 저자의 느낌과 깨달음과 더불어 어떤 이야기보다 잔잔하고 깊게 다가왔다.

 

역시 삶은 언제나 책보다 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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