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책 읽는 시간 / 니나 상코비치
웅진지식하우스 / 리디셀렉트
흔한 독서에 관한 책 중 하나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쓰는 서평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자신의 삶과 책을 융합하듯 쓴 그녀의 글들은 마음을 움직이며, 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은 마음을 짓눌렀다. 격한 감정의 요동도 없는 편이고 무엇이든 조곤조곤 이야기 하듯하는 그녀의 글 마지막에 와서는 그 잔잔한 감정들이 모여 큰 진폭을 이루어 울컥하게 만들었다. 무언가 고요하고도 아름다운 책이었다.
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등에 짊어지고 3년이 지난 뒤 슬픔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놓여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대답을 원하는 것이다. "나는 왜 살아갈 자격이 있는가?"라는 무자비한 물음에 대한, 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책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한 해 동안의 독서는 내가 삶으로 돌아가는 탈출구가 되어줄 것이다.
저자 니나 상코비치는 40대 중반의 언니를 암으로 잃는다. 그녀는 3년 내내 언니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전투적으로 네 아이를 키우며 열심히 살아보지만 언니의 죽음 이후 3년, 그녀는 이제 쉬기로 결심한다. 일 년간 매일 한 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며 언니를 기억하기로 했다. 이 책은 일년간 매일 읽고 쓴 서평의 기록이다. 그렇게 그녀의 독서가 시작된다.
넌 내게는 중요한 사람이야. 이 말을 읽으면서 나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이게 바로 사랑의 핵심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중요해지는 것. 다른 모든 존재 중에서 내게 중요한 하나의 존재. 뭔가 개인적이고 특별한 어떤 것을 한 인물이 설명해줄 수 있다. 우리는 변해도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제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사랑받는다. / 그들이 내게 항상 얼마나 중요한 존재들인지 알려줘야 한다. 겨울의 마지막 나날에도 사랑의 말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준다.
다행이 그녀의 곁에는 항상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둘째 언니, 남편 잭, 네 명의 씩씩한 아들, 의붓딸, 그녀를 걱정하고 책을 읽는다고 하자 여러 책들을 추천해 주었던 주변 친구들, 아들들은 책 읽기에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설거지 등의 집안일들도 거들었다. 참 사랑스러운 집이다.
이제 이런 책을 읽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할 수 있다. 온갖 종류의 인간의 경험을 목격한다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데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규정하는 것, 누가 중요하고 왜 중요한지를 규정하는 데 그것은 필요하다.
자신이 앉은 자리에서 전쟁에 관한 책을 읽음으로 그녀는 전쟁을 간접 경험하게 된다. 비록 간접 경험이지만 그녀는 진땀을 나고 눈물이 흘렀다. 책 속에서 느끼는 전쟁으로 인한 잔혹한 행위, 그로 인한 가족을 잃은 슬픔, 전쟁의 참화, 인간의 본성. 그것을 줄 수 있는 것은 책뿐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독서에 관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특히 문학에 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나같이 강조하는 점 중 하나는 바로 '간접 경험'이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일을 오감이 생생하도록 표현한 묘사에 따라 우리는 그것을 상상하고 느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학 속 주인공이 마시는 상쾌한 공기, 새콤한 과일, 감정의 진동, 발바닥 아래에서 느껴지는 흙길의 우둘투둘함, 오열하는 고통 등등 우리는 많은 것을 책을 통해 상상해 볼 수 있다.
독서는 나의 상실과 혼란이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두렵고 피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세계의 다른 사람들의 것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감정이입을 함으로써 살아간다. 공포와 혼란감, 고독과 슬픔의 부담을 나누어 짐으로써 나는 내 부담을 가볍게 할 수 있었다. 부담은 이미 덜어지고 있다. 나의 욕망은 다시 파종되고 나의 필요는 다시 심어진다. 나는 들장미 가시와 잡초가 돋아나지 않은 정원에 있고, 혼자가 아니다. 거기에는 잡초를 뽑고 태양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 모두가 있다.
그녀는 점차 책에서 여러가지 위안을 얻고 여전히 언니를 절절하게 그리워하며 그녀의 독서 계획은 쭉 진행된다.
책은 나의 타임머신, 회복의 수단이자, 어린 시절과 더 오랜 시절로부터 온 재점화의 축복이었다.
가끔은 의미가 거의 없는 세계에서 추리물은 삶의 변형과 전환을 수용하고, 그것들을 결국은 의미가 있는 플롯으로 진행할 수 있다. 어떤 의문이 해결된다. 거기서 얻는 만족감은 엄청나다.
그녀의 1년 독서가 거의 막바지에 다달을쯤 그녀는 어떤 것을 깨닫게 된다.
내 반응은 내게 달려 있다. 적절한 종결이란 삶이 그에게 무엇을 주는가가 아니라 삶이 주는 것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삶의 의미는 결국은 내가 그런 기쁨과 슬픔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연대와 경험의 빗장을 어떻게 만드는가, 또 제각기 다양한 구불구불한 존재의 길을 가는 동안 어떻게 손을 뻗어 사람들을 돕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마지막 독서를 하고 나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품을 치료해줄 수 있는 약은 없다. 또 있어서도 안 된다. 슬픔은 질병도 아니고 감염도 아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이며, 우리가 삶 그 자체를, 그 모든 경이와 전율과 아름다움과 만족감을 얼마나 귀중하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긍정이다.
사실 책을 읽고 그녀의 상처나 슬픔이 사라지거나 치유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책으로 힐링, 이런 것이 아니다. 그녀는 책을 통해 삶의 여러 메세지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그 '반응'을 달리 하게 된 것 뿐이다. 오로지 슬픔 속에서 허우적대던 그녀는 슬픔과 언니에 대한 추억을 다름답게, 마음속에 간직한 채,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로 했을 뿐이다. 계속 책을 읽으며 계속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계속 행복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겠다고 그렇게 반응한 것 뿐이다. 책은 그녀의 생각을 바꾸어 다르게 반응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그녀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자 근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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