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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3) 문학소설,에세이,시

우아한 거짓말 - 김려령

by DORR 2022.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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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 김려령

창비 / 리디북스

 

 

 

잘 모르겠다. 우울증이 사람의 정신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어떻게 삶의 의지를 야금야금 갉아먹어 가는지. 그저 책을 읽고 짐작해 본다.

 

내가 '자살'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했던 때를 떠올리면, 집으로 가는 길의 높다란 다리가 생각난다. 한탄강의 마른 바닥이 휑하게 들여다보이던 강바닥을 보며 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죽을까? 다리쪽 먼저 떨어지면 상해만 입을 지도 모르겠다, 머리부터 떨어져 바위에 머리를 박는다면 확실하게 죽음에 이를 수 있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다리를 건넜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내 나이로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의 빚을 지고 있었고, 그것을 가족에게 숨기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매번 다리를 보며 이어졌던 자살충동에 가까운 감정은 어머니에게 빚진 금액과 상황이 모두 들통나서 신나게 얻어맞고는 싹 사라졌다. 어머니는 내 빚을 대신 떠안았다. 그 대가로 월드컵이 한창이던 시절, 다들 나가서 거리 응원하고 월드컵에 신나게 빠져 붉은 악마를 소리칠 때, 하루 12시간씩 틀어박혀 일하며 빚을 갚아 나갔다.

 

나의 경험이 그런지라 '자살'하면 물질적,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성인과 노인의 많은 수가 돈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가 가장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울함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우울증'이라는 병이 되면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아버지를 잃고 혼자 일하는 엄마와 언니를 둔 열 네살의 천지의 마음을 어떻게 짐작 할 수 있을까. 여리고 착하고 섬세하고 순딩순딩한 그 소녀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저자의 말 처럼 누군가 "잘 지내니?"라고 안부를 물었다면 괜찮았을까?

 

학창 시절의 따돌림에 대해서 알고 있다. 어린 학생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그 세계와 사회는 크고 절대적이다. 그 밖에 있는 어른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봐라 암만 충고를 해봤자 물리적으로 그 속에 속해 있는 학생에게 충고는 헛된 메아리일 뿐이다. 성인의 입장에서는 간편하고 단순한 맺고 끊는 문제일 뿐인데, 아이들에겐 가장 까다로운 난제다.

 

천지와 화연의 관계가 그랬고 천지와 미라의 관계가 그랬다. 엄마는 항상 바빴고 언니는 강하고 무뚝뚝했다.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며 신호를 보내봐도 그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천지는 눈이 감기면서도 상상을 했다. 엄마가 늦지 않게 달려와서 자신의 죽음을 막아주는 꿈, 뒤로 돌아 달려와 자신에게 와주는 꿈, 자신을 꽉 껴안고 참아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꿈, 아빠를 보러 가자고 말하는 꿈.

 

같이 있어 외로운 것보다 차라리

혼자 있어 외로운 것이

나았던 그런 곳입니다.

 

소설에서는 천지의 언니 만지가 동생의 죽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화연의 의도적이고 악랄한 괴롭힘, 미라의 차가운 눈빛. 천지는 수행평가에서 경고했다. 조잡한 말이 뭉쳐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혹시 예비 살인자는 아닙니까?

 

천지는 실뭉치 속에 엄마, 언니, 화연이, 미라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남겼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용서한다. 만지는 삐뚤어지는 화연을 붙잡는다. 친구들에게 지갑 취급을 받고 욕을 먹고 사실 천지 외에는 진짜 친구랄 것도 없었던 화연. 학교에 나가는 것도 싫고 부모님이 하는 짜장면 집도 싫어서 나쁜 소문을 퍼트리고 자장면 그릇을 숨겨 버리는 삐뚤어진 아이, 더 어렸을 때 부터 도벽이 있고 애들을 괴롭혔고 비굴했다.

 

앞으로는 사람 가지고 놀지 마. 네가 양손에 아무리 근사한 떡을 쥐고 있어도 그 떡에 관심 없는 사람한테는 너 별거 아냐. 별거 아닌 떡 쥐고 우쭐해하지 마. 웃기니까.

 

그런 삐뚤어진 아이였던 화연도, 천지에게 미안하고 외로웠다. 천지를 따라 가고 싶었던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만지가 두려우면서도 고마웠다. 못된 화연이에게도 이렇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는데 어째서 그 착한 천지에겐 아무도 없었을까.

 

너 밖에 없다는, 사랑한다는, 모두 너를 위해서라는 우아한 말이 아닌, 진심이 담긴 평범한 안부 인사를 건네주는 사람이 없었을까. 세상을 떠난 천지의 마음을 전부 이해할 순 없지만, 책을 다 읽은 후에 한참 동안 울컥울컥 목이 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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