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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3) 문학소설,에세이,시

소공녀 -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by DORR 2022.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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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펭귄클래식 / 리디북스

 

 

소공녀는 6년 전에 리딩 투게더 카페에서(리디북스에서 운영하던 카페였는데 지금은...리디지기님 어디 가셨나요 ㅠㅠ) 읽었던 책인데 다시 읽으니 또 새롭다. 그때는 예전에 봤던 만화영화를 되새기며 동화책 읽는 기분이었다면, 이번에는 하나가 되는 독서모임의 가이드를 따라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이래서 독서 모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읽으며 (왜 처음 읽는 것 같은 기분이지...) 처음 든 생각은 "사라는 사기캐" 이다.

7살 나이에 영어와 프랑스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고 부자 아버지를 뒀고 어른 같은 성숙함에 책을 좋아하고 똑똑하고 매력적인 외모(본인은 못생겼다 생각한다 해도), 타고나게 품위 있고 고운 성품.

 

요즘 웹 소설로 치자면 만렙의 캐릭터가 저렙들 사이에서 돋보이다가 갑자기 능력을 잃고 1렙이 되어버려 무시당하던 중 만렙을 회복하여 평정하는 그런 플롯과 케릭이랄까. 물론 이런 식의 1차원적인 구조라면 이토록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겠지만, 그것은 나중에 살펴보고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가 요즘 웹 소설의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을만한 구조라는 점이다. 다소 미약하긴 하지만 민친 교장에게 복수하는 듯한 기분도 그렇고 말이다.

 

저는 진짜 공주처럼 행동하려고 애썼을 뿐이에요.

도저히 견디기 어려울 만큼 춥고 배고플 때조차도.

 

사라의 모든 만렙 능력치 중 최고로 품위가 있던 것은 베풂이었다. 자신도 너무 배 고픈데, 그것을 더 배고픈 아이에게 나누어주는 마음씨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 대목에서 주책맞게도 눈물이 찔끔 나왔다. 사라의 고됨과 굶주림을 절절히 느끼고 있었는데, 얼마나 배고플까 하는 마음에 너무 가여웠다. 또한 소외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을 보듬으며 이야기를 만들어 내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을 알자 그것도 끊임없이 행한다.

 

내가 만일 공주라면, 진짜 공주라면, 모든 백성에게 아낌없이 베풀었을 텐데. 하지만 내가 그런 척하는 가짜 공주일지라도,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작은 이야기들을 지어내면 돼. 조금 아까처럼 말이야. 그 아인 꼭 엄청나게 많은 걸 받은 것처럼 무척 기뻐했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베푸는 척할 거야. 지금까지도 난 많은 걸 베풀었잖아.

 

그녀의 상상력은 춥고 황량한 다락방에서도 꽃 피어난다. 다락방에서 노을이 지는 아름다운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장면에서는 나도 그곳에서 함께 멋진 장관을 보고픈 마음이 들게 했다.

 

아름다운 이야기 내내 사라의 상상력에 대해 나오니, 나도 상상력을 발휘해 보았다. 하지만 내가 발휘하는 상상력은 참으로 거시기하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사라가 다락방에서 하녀처럼 살게 되고 그녀와 잠시 멀어졌던 어먼가드가 다락방에 와 다시 친구가 되는 장면에서는 이제 사라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만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어먼가드는 점점 사라를 더 고립되게 만들고 사라에게 미저리처럼 집착하는데... 다락방의 손님 멜기세덱은 사실 끔찍한 괴물로 순진한 척 사라를 노리고 있다가 결국 본색을 드러내고 원래의 쥐보다 훨씬 큰, 사람만 한 본체를 드러내 사라를 잡아먹으려 한다. 라거나...;;

 

비록 나의 망상은 이렇게 어둠에 사로잡혀 있지만, 사라의 상상력은 '이야기의 힘'을 깨닫게 만든다.

 

그건 이야기에서 다른 걸 생각하게 해주는 힘이 있기 때문이야. 내가 깨달은 건 말이지. 몸이 힘들면 마음은 다른 무엇인가를 생각하도록 해준다는 거야

 

현실을 잊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 나도 종종 너무나도 걷는 게 지겨울 때, 운동하기 싫을 때는 음악을 들으며 즐거울만한 상상을 하거나(로또를 맞는다거나, 오로라를 보러 간다거나) 재미있는(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책을 TTS로 듣는다. 그러면 그 지루한 일이 잠시 잊히고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부딪히는 일이 생겨난다. 아직까지 일을 하려면 모든 시스템이 사람과 얽혀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때에는 다 때려치우고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냥 슬쩍 모르는 척 내려놓고 다른 일을 구하거나 뭐든 도피하고 싶다. 일 자체가 아니라 사람 때문에 힘겨워서.

 

공주라면 자신을 비웃는 사람에게 앙갚음해서는 안 되니까. 그러고 싶어도 혀를 깨물고 싶어서라도 참아야 해. 나도 그렇게 참았지. 오늘 오후는 추웠어. 멜기세덱. 이 밤에도 여전히 춥구나.

 

사라가 멜기세덱에게 하는 혼잣말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생각하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예의를 다 하면 후회는 없겠다는 생각. 거기서 나아가서 무언가 바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사실 도피로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그것이 사라에게서 배운 또 다른 품위였다.

 

그러나 이 동화같이 아름다운 이야기 뒤에 계속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 버넷이 이 이야기를 출판했을 무렵은 1880년대로 그 당시 영국은 서구 열강의 중심으로 제국주의를 펼치고 있었다. 인도에서 온 람 다스, 인도에서 찾아낸 다이아몬드 광산. 람 다스는 인도 신사를 주인으로 모시지만, 과연 그것이 자신이 원한 일이었을까. 물론 인도의 불가촉천민이었다면 인도 신사 톰을 따라 영국에 온 편이 훨씬 행복했을 수 있을지 모른다. 여하튼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캐리스포드와 크루 대위가 찾아낸 다이아몬드 광산도 사실 인도의 것이다.

만일 사라가 '사라'가 아닌 '미치코'이고 인도에서 온 '람 다스'가 한국인 '김 씨'였고 크루 대위가 찾아낸 다이아몬드 광산이 한국에 있었던 것이라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읽힐까?

 

그런 면에서 베키도 그랬다. 가족이 없는 고아 부엌데기 베키는 끔찍한 민친의 손에서 벗어나지만 그래도 결국 사라의 몸종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 당시 시대가 그러했으므로 버넷도 사라도 베키도 자신의 신분에 순응하면서 살았겠지만, 2022년 현재 시점으로 볼 때 내심 그 점이 마음에 걸린다. 그저 19세기에 씌여진 이야기라고 이야기라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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