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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3) 문학소설,에세이,시

기꺼이 길을 잃어라 - 로버트 커슨

by DORR 2022.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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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길을 잃어라 / 로버트 커슨

열음사 / 10004님(감사합니다!)

 

 

 

아빠는 평생 뭔가 흥미로운 것을 만날 때마다 항상 달려가서 해봤단다. 때로는 피가 날 때도 있었지. 너희들도 들어서 잘 알잖니? 또 어떤 때는 그냥 모험으로 끝난 적도 있지.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아빠는 늘 행복했단다. 해봐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거든. 다이앤 고모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다쳤던 때처럼 말이야. 아빠는 말이다 자전거를 타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만 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고 싶지 않단다. 그건 말이야 부딪히고 다치는 것보다 훨씬 좋지 않은 일이거든. 그렇지? p.159

 

 

무기력.

해야 할 일은 산더미고 진행은 더디고. 목표는 저 멀리서 비웃고 있고.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절망이 짓누르고 있을 때. 러스웰 카페에 만사님께서 올린 글을 보았다.

 

내 삶을 바꾼 책이라고 소개하셨는데 딸을 낳고 오랜 단절 후 첫 출근 때 이 책을 읽으셨다고 한다. 진작에 때려치웠을 회사를 10년이나 다니게 한 힘을 준 이 책. 이 책이 궁금해졌다. 나중에 꼭 봐야지, 생각하며 요즘같이 무기력할 때 보면 좋을 것 같다는댓글을 달았는데 만사님께서 절판된 이 책을 중고로 구입하셔서 보내주셨다. 항상 책 선물을 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유쾌하고 활기넘치는 활동을 하시며 항상 베푸시는데, 꼭 닮고 싶은 모습이다.

 

이 책의 저자는 로버트 커슨이지만 실제 주인공은 마이크 메이란 사람이다. 마이크 메이는 3살에 폭발로 두 눈의 시력을 모두 잃었다. 그렇지만 그는 자전거를 타고(!) 말을 탈 줄 알며(!!) 전자공학과 국제학을 공부해 CIA에서도 일했고 활강 스키 세계기록 보유자기도 하다(!!!). 내가 이 책에서 예상한 그림은 이것이었다. 그가 시력을 잃고 이 모든 도전들을 해내기까지의 노력과 인내, 감동, 도전, 한계의 극복을 그려내는 그림.

 

그러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이 이야기는 시각장애인으로 아름다운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행복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온 마이크 메이에게 다가온 제안으로 시작한다. 그는 이미 깨지고 부딪치고 피를 흘리며 앞서 설명한 여러 활동들을 잘 해냈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다시 검사하고 줄기세포 이식과 각막 이식을 통한 수술로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제안에 그는 오랜 시간을 고심한다.

 

그런 호기심이 오리 진의 부모에겐 산소와 같았다. 그들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세상을 탐험하는 마음, 바로 그것이었다. 가족에게는 하인들과 요리사, 하녀까지 있었지만 삶을 적극적으로 호흡하지 않고 그냥 저절로 흘러가게 내버려둔다는 것은 제임스 가정에서는 독과 같았다. 사람이라면 스스로 찾아나서는 삶을 살아야 한다. p.33

 

그가 수술을 앞두고 고민하는 것과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교차 되어 진행된다. 어머니 오리 진은 마이크 메이의 유산이었다. 호기심 넘치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삶을 사는 오리 진은 알콜중독이던 남편과 헤어지면서도 형제들과 똑같이 마이크에게 청소를 시켰고,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마이크가 눈이 안보여서 할 수 없어요, 하는 활동들을 할 수 있도록 설득시켰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이크가 자전거를 타고 시내로 나가겠다고 했을 때였다. 그녀의 머리속에서는 사건과 사고에 대한 걱정이 휘몰아쳤지만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겁이 날까봐 걱정하지는 마라, 겁이 날 때 겁이 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니까'라고 말한다. 마이크는 자전거를 타러 나가고 그녀는 2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이 걱정되어 차에 탔다가도 아들을 믿지 못하는 엄마로 비춰질까봐 그만두고 청소를 한다. 3시간 만에 마이크가 돌아왔을 때도 이 일이 굉장한 사건처럼 느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어땠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오리 진의 이러한 믿음이 없이는 지금의 마이크가 될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마이크는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다니고 여자친구도 사귄다.

 

길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은지 친구들이 물으면 때로는 겁이 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어디에 닿을지 전혀 알지 못할 때 가장 멋진 일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또 헤매다 길을 찾았을 때 어떤 기분인지 물어오면 마치 앞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해줬다. p.77

 

마이크가 평범하게 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이크는 그저 그런 사람일 뿐이었다. 궁금한 것을 해내고 도전하고 몇 번 넘어지고 피가 나고 부딪쳐도, 겁이 나서 숨이 막혀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당연한 그런 사람이었다. 굿맨 박사의 제안 앞에서 6개월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수술을 받기로 결심한다. 아이들의 모습이 보고 싶기도 하고 그 무엇보다 그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시력을 잃었던 사람이 빛을 되찾으면 엄청 행복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재앙과도 같게 느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이었다. 태어나서부터 시력을 잃었다가 되찾은 사람의 케이스가 극히 드물지만, 그들은 내내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세상과 사물과의 상호교감은 너무도 중요하며, 이것 없이 인간은 세상을 결코 제대로 볼 수 없다. p.308

 

마이크는 시력을 회복한다. 두 번의 수술을 거쳐 눈을 뜨게 되고 가장 먼저 색상과 움직임을 알아본다. 모든 것이 행복할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미 예상했듯이 그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심지어 남자와 여자의 구별도 하지 못했다. 아들 둘을 구분하지 못했고, 물체의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인식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마치 외국어로 문장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처럼 사물을 볼 때 이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먼저 해야했다. 그 모든 것들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어서 마이크 메이를 지치게 했다.

 

이런 연구 결과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세상과 사물의 상호교감은 시각을 유용한 도구로 만드는 것에 있어서 꼭 필요한 지식을 쌓아가는 데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p.309

 

설상가상으로 시력을 회복한지 8개월 만에 면역반응이 그의 이식체를 공격해 다시 시각장애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의 거부반응은 최악의 상황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마이크 메이의 눈 표면에 주사바늘이 뚫고 들어왔다. 그가 이제껏 겪어왔던 아픔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야만적인 고통이 그를 엄습했다. 그는 이런 주사를 수차례 더 맞아야했다.

 

다행이 몇 개월 후 굿맨 박사는 그에게 기적이라고 말하며, 그의 눈이 깨끗하게 나았다고 말해주었다.

 

마이크 메이는 다시 스키를 탔다. 눈이 보이지 않을 때 타던 스키와 눈이 보이고 타는 스키는 달랐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그는 겁을 먹었다. 그림자와 나무와 사물의 구별이 속도 때문에 너무 빨라서 잘 안되었다. 그는 계속 넘어졌고 부딪쳤다. 그만, 됐어, 더는 못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눈을 감고 다시 스키를 타던 익숙한 감각을 끌어올렸다.

 

메이는 폴대를 들어 올려 눈을 짚었다.. 폐가 들이마실 수 있는 만큼 숨을 크게 들이쉬고 몸을 일으켰다. 무릎부터 발까지 천천히.

‘길은 있어’. 그는 생각했다.

눈을 떴다.

‘방법은 늘 있지. 부딪히며 앞으로 나아간다면 할 수 있어.’ p.254

 

그는 20분 동안 30분은 더 쓰러졌다. 그리고 혼자 서 있을 수도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오늘은 더 못타라고 말한다. 그것이 마이크 메이고 그것이 그의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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