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프랑수와즈 사강
민음사 / 동두천시립도서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누가 묻는다면 나는 단번에 대답할 것이다. 아니요.
그리고 덧붙이겠지.
난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해요. 특히 피아노 협주곡 1번의 2악장을 사랑해서 수 백번은 들었답니다. 차갑고 스산하고 러시아 겨울의 쓸쓸한 풍경이 떠오르는 도입부부터 밤하늘의 별이 반짝반짝 거리는 것 같은 후반까지, 아름다운 곡이니 꼭 한 번 들어보세요. 브람스는 교향곡 3번 3악장 정도만 가끔 듣는 정도에요.
소설 속에서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묻는 것은 시몽이다. 그는 25살의 젊고 매력적이고 눈에 띄게 잘생긴 청년이다. 질문에 대답을 하는 사람은 폴이다. 한 번 결혼했었던 39살의 그녀는 6년이나 만난 로제라는 연인이 있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폴의 애인 로제는 계속 바람을 핀다. 하지만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긴 한다. 그리고 그녀도 그를 사랑하기에 바람피는 것을 묵인한다. 이런 개똥같은 마인드가. 프랑스는 이런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뒤로 갈수록 폴의 마음은 공감이 갔다. 로제는, 로제의 마음은, 모르겠다.
항상 로제에게 맞추고 저녁 8시에 오지 못한다는 그의 전화를 기다리던 폴. 그러던 그녀에게 시몽이 나타난다. 그는 폴에게 빠져 꾸준히 구애를 한다. 너무 눈에 띄게 잘생기고 그녀에게는 너무 어린 시몽을 인식하게 된 계기는 그가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물을 때였다.
요즈음 그녀는 책 한 권을 읽는데 엿새가 걸렸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해당 페이지를 잊곤 했으며, 음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냈다.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은 그녀가 잊고 지내던 자신을 상시시켰다.
자아를 잃고 흔적을 잃고 의도적으로 피하고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 뭔가 송곳이 가슴을 찌르는 기분이었다. 생활에 치여, 삶에 치여, 경제적인 속박에 치여 이런것들을 잃고 살아가던 시간이 얼마나 긴지. 이런 것들을 찾기 위해 나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독서 모임을 하는 것인지 모르곘다.
폴은 로제에게 안녕을 고하고 시몽과 연인이 된다. 하지만 그 관계는 오래 가지 않는다. 그 답은 마지막 그녀의 외침에 있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만약 내가 스물 여섯살이었다면 폴의 선택에 분노를 터트렸을 것 같다. 이 늙고 멍청하고 어리석은 여자야! 저 로제라는 쓰레기 같은 남자를 버려두고 젊고 잘생기고 헌신적인 시몽에게 가란말이야! 그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그런데 현재의 나는 폴의 선택을 이해한다. 공감한다. 아마도 내가 그녀와 비슷한 연배라서 그런것일지도 모르겠다.
시몽은 젊다. 그의 열정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그가 로제와 오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이미 숱한 사랑을 경험했기 떄문일 것이다. 이미 결혼까지 해봤던 그녀는 젊은 시절 뜨겁고 순수했던 열정이 어떻게 식어가는지, 어떻게 변화하는지 반복해서 지켜봤을 것이고 결국은 현실적이고 지속적인 사랑을 택한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다른 선택지도 분명 존재한다는 점이다. 로제와의 관계는 누가 보더라도 그녀를 서서히 잃어가게 만드는 마이너스한 관계이다. 시몽과의 관계 또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의 상처받을 자신의 모습을 뻔히 그려볼 수 있는 그런 관계이다. 그렇다면 둘 다 벗어나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베토벤을 좋아하는지, 차이코프스키를 좋아하는지 알아볼 시간을, 자신에게 집중하며 좀 더 삶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면 어땠을지.
사랑이 삶의 필수적인 요소라면, 타인이 아닌 나를 좀 더 사랑하고 집중했다면 그녀는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끝이 물음표가 아니라 '...' 인 이유는, 아무래도 시몽과의 관계의 덧없음 때문이기도 하고 결국 그 물음이 주었던 그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찾지 못하고 외로움과 여러가지 이유로 로제에게 의지하는 면 때문인 것 같다라고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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