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리뷰3) 문학소설,에세이,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이어령

by DORR 2022. 8. 8.
728x90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이어령

열림원 / 리디북스

 

 

문명을 읽다 와 지성과 영성의 만남을 통해 만났던 이어령 선생님. 자연스럽게 이어령이란 이름 뒤에는 선생님, 교수님 같은 호칭이 붙게 된다. 그만큼 많은 존경을 받아 마땅한 분이기도 하고, 많은 업적과 저서를 남기셨다. 그런 이어령 선생님이 암 투병 중이라고 한다. 삶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김지수라는 기자와 함께 마지막 인터뷰를 통해 마지막 수업을 남기셨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마지막이 아니라 건강이 허락하는 한 좀 더 책을 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은 김지수 기자의 인터뷰에 따라 주제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베이스에 깔려있다. 이어령 선생님의 지식은 방대하고 놀라우며, 매번 적절한 비유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전달한다.

 

민주주의의 평등은 생각하고 말하는 자의 개별성을 인정하는 거라네. 그 사람만의 생각, 그 사람만의 말은 그 사람만의 얼굴이고 지문이야. 용기를 내서 의문을 제기해야 하네. 간곡히 당부하네만, 그대에게 오는 모든 지식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지 말게나.

 

이어령 선생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만의 사고를 했다고 한다. 그냥 시키는 대로 알려주는 대로 받아들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왜 이럴까, 저것은 왜 이럴까, 항상 묻고 의심했고 그에 대한 끝없는 질문을 하는 '문제적 인간'이었다. 그는 '그래서 외로웠다'라고 말한다.

 

목장에서 소가 풀 뜯는 걸 봐도 여기저기 드문드문 뜯어. 풀 난 순서대로 가지런히 뜯어먹지 않는다고. 그런데 책을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 그 책이 법전인가? 원자 주기율 외울 일 있나? 재미없으면 던져버려. 반대로 재미있는 책은 닳도록 읽고 또 읽어. (...) 책 많이 읽고 쓴다고 크리에이티브가 나오는 것 같아? 아니야. 제 머리로 읽고 써야지.

 

이 문구는 나에게 살짝 충격이었다. 나의 독서 방식을 바꾸자, 하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나의 머리로 읽고 쓰는 훈련을 꾸준히 해야겠다고도 다짐했다.

 

내가 여러 번 얘기하지 않았나. 덮어놓고 살지 말라고. 왜냐면 우리 모두 덮어놓고 살거든. 덮어놓은 것을 들추는 게 철학이고 진리고 예술이야.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가 가장 감쪽같이 덮어놓고 있는 게 무엇일 것 같나? 우리가 감쪽같이 덮어둔 것. 그건 죽음이라네. 모두가 죽네. 나도 자네도.

 

매번 묵직하게 등장하는 죽음이라는 주제. 죽음의 흔적을 없애면 생명의 감각도 희미해진다고 말씀하신다.

 

질문하는 한, 모든 사람은 배우고 성장한다는 것이다. 질문은 자기모순적이고 연약한 인간이 이 미스터리한 세계와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며, 내가 낯선 타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질문은 참 많은 곳에 등장한다. 특히 좀 더 나아지고 자신의 삶의 발전시키기 위해 빠짐없이 등장하는 키워드가 '질문'이다. 문득 나에게도 묻는다. 나는 얼마만큼의 질문을 하는가? 좀 더 질문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프레임이 갇혀 사는지 스스로 깨달아야 해. 어린애 눈으로 보면 객관적으로 알아. '어, 이상하다!' 그런데 고정관념의 눈꺼풀이 눈을 덮으면 그게 안 보여. 달콤한 거짓말만 보려고 하지.

 

솔로몬의 심판을 비판하는 이어령 선생님의 시선에는 깜짝 놀랐다. 아무런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 '프레임'이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아이를 반으로 쪼개서 가지라고 했을 때, 가짜 어머니는 죽은 아이 반쪽을 뭐에 쓰려고 좋다고 했을까? 하는 의문에는 눈을 껌뻑거리게 된다. 당연하게 의심없이 받아들였던 것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뜬 소문에 속지 않는 연습을 하게나. 있지도 않은 것으로 만들어진 풍문의 세계에 속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 진실에 가까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네. 그게 싱킹맨(thinking man)이야.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사고해야 하네. 어른들은 머리가 굳어서 '다 안다'고 생각하거든. '다 안다'고 착각하니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거 문지 말라'고 단속을 해. 그런데 쓸데없는 것과 쓸데 있는 것의 차이가 뭔가? 잡초와 잡초 아닌 것의 차이는 뭐냐고? 그것은 누가 정하는 거야? 인간이 표준인 사회에는 세상 모든 것을 인간 잣대로 봐. 그런데 달나라에 가면 그거 다 소용없다.

 

 

타자와 내가 하나가 되는 흔치 않은 순간이 있다네. 그것을 사랑이라 할까, 상호성이라 할까.

갑남을녀가 하는 보편적인 사랑은, 그런 건 다 책에 써 있잖아. 거기서 다 확인들을 하잖나. 나는 사람들이 책 읽는 이유가 두 가지라고 생각하네. 내가 모르는 걸 발견하려고 읽는 사람이 있고, 내가 아는 걸 확인하려고 읽는 사람이 있어. 대부분은 확인하려고 읽는 거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책에서 하는 발췌만으로는 이 책의 아주 작은 일부만 드러낼 뿐이다. 부디, 좀 더 많은 분들이 이 어르신의 마지막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며 좀 더 지혜롭고 삶을 조금 다른 시선을 비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 목사님이었던 딸의 죽음 이후 이어령 선생님은 종교를 갖게 되셨다. 부자가 천국으로 가는 일이 바늘귀 사이로 들어가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지성이 뛰어난 사람도 그와 같을까 생각을 해본다. 너무 뛰어나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의 벌거벗은 인간, 아무것도 남지 않은 초라하고 부족하고 죄인인 인간이 되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 아닐까. 종교에 관해, 성경에 관해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대부분을 납득하거나 공감하지 못했다. 이성적인 부분에서는 이해가 가는데, 나의 종교적인 지식과 믿음으로는 안타까웠다. 새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가장 낮고 낮은 죄인, 가난한 자, 아픈 자, 소외된 자, 목마른 자에게 다가가셨던 예수님. 새삼스럽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은 방대하고 다양한 지식과 지혜, 깨달음과 해학이 담겨있다. 이 시대 최고의 석학이라 일컫는 이어령 선생님의 죽음을 앞둔 가르침은 무엇보다 귀하고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다양한 이야기와 비유가 담겨 있어서 좋았고, 빠르게 전환되는 주제들과 그 와중에 맥락을 잃지 않고 핵심을 전달하는 방법도 좋았다.

 

그저 바람은, 부디 그 가르침을 조금 더 전해주고 가시기를. 좀 더 하나님의 곁에 가까이 머무르다가 가시기를. 영상 속의 야위고 왜소해진 육체 가운데서도 반짝반짝 빛나 아름다운 그 빛이 우리의 마음에 더 깊숙이 와닿기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