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리뷰3) 문학소설,에세이,시

숲속의 자본주의자 - 박혜윤

by DORR 2022. 8. 1.
728x90

 

숲속의 자본주의자 / 박혜윤

다산초당 / 리디북스

 

 

나는 여전히 에세이를 읽는 것이 힘들다.

아름다운 문장이 나오거나, 오랜 경험과 사색으로 인한 삶의 무게나 묵직한 통찰을 주거나, 위트있고 유머가 있어 피식피식 웃음을 짓고 유쾌하게 만들거나, 놀랍고 새로운 경험을 전해주거나, 깊은 감동으로 눈물짓게 만들거나 아니면 그냥 재미있던가.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나의 시간을 멈추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이야기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방향이고 이해할 수 없을 때는 더더욱. 이 책의 부분적인 챕터에는 제법 공감가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저자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앞선 여러가지 요건에 하나도 해당되지 않으면서 나와 생각이 다른 에세이를 읽는 것은 매우 고되다.

 

 

그럼에도 분명 생각해 볼만한 것이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챕터, '우리 옆집에는 태극기 부대가 산다'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웃집 친구를 좋은 사람으로 받아들이면서, 내가 속한 세계가 유일하다는 확신이 느슨해졌다. 좋은 사람, 좋은 삶을 위해 무조건 정해진 단 하나의 정치적 입장, 태도, 지식, 교육, 삶의 방식은 없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은 멸종 동식물만이 아닌지도 모른다. 나와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도 사이좋게 지낼 수 없다면, 다른 무엇을 보호할 수 있을까.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 한국 사회, 사회적인 통념, 고정관념 등등의 여러 굴레에서 벗어나 주변의 자연과 사랑하는 가족과, 가까운 이웃들과 공존하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저자의 삶이 전혀 부럽지 않다. 서울 한 복판의 널찍하고 좋은 집에서 여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즐기고 맛있는 것 먹고 부유하게 문명과 도시의 혜택을 받는 삶이 훨씬 부럽다. 나는 그냥 사회와 미디어와 자본에 찌들어 사는가보다 한다. 그러다 또 사람마다 행복과 삶의 목표와 가치가 다르니까 하고 생각한다.

 

책에서 말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방법이 나에게는 도피나 회피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에 지친 젊은 세대들에게 내려 놓고, 욕심 부리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고 생각을 바꾸라는 그런 위로를 건네는 힐링처럼. 책에서 나온 법륜 스님의 강연에서처럼, 저자가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처럼 정말 원한다면 회로를 만들고 자신을 변화시킨다. 저자의 삶의 부럽다 하면서 정작 그런 삶을 실천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은 정말 원하는 삶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뤄지지 않는 꿈에 허덕이거나, 사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을 보면 은근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원하던 물건을 마침내 구했다며 기뻐하는 사람부터 시작해 어떤 대상에든 끈질긴 애정과 열정을 보여 결국 성취한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고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뤄지지 않는 꿈, 사고 싶은 무언가. 오랫동안 원하던 물건.

나는 이 것들이 없는 삶이 얼마나 각박하고 밋밋한지 알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꾸만 넘어지는 꿈에 대한 도전, 사고 싶은 무언가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아끼고 결국 그것을 얻었을 때의 기쁨. 그 기쁨이 아주 잠깐이더라도 그것을 위해 노력한 시간이 참으로 설레지 않았는가. 저자가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아 그것을 갚으면서 느꼈던 기쁨과 비슷하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에게는 균형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물질과 그렇지 않은 가치와의 균형을 잘 잡아 가는 것이.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취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 옆집에는 태극기 부대가 산다'와 함께 '시간을 멈추는 유일한 방법' 챕터가 좋았는데ㅡ, 그곳에 몰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행복을 주는 몰입을 시작하는 건 누구에게나 대단히 귀찮은 일이다. 웹서핑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을 잊기도 하지만, 그런 시간 동안에는 깊은 행복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운동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들은 사실 몰입 상태로 돌입하기까지 초기의 난관을 넘어야 한다. 편안한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서야 하고, 책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책을 펼쳐 들고 지루한 부분들을 견뎌야 한다. 클릭하자마자 빠져드는 유튜브와는 다르게 모든 과정이 너무도 번거롭다. 모모처럼 사랑의 행위로서, 나의 시간을 온전히 멈추고, 영원의 시간에 입장하는 것은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다. 그런데 이 귀찮은 일을 왜 해야 하는 걸까? 지속되는 깊은 행복으로 가는 아마도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런 행복을 왜 느껴야 할까? 우리는 몰입이라는 사랑이 가져다주는 깊은 행복을 느낄 때 비로소 죽음과 삶의 연속성을 체감할 수 있다.

 

안그래도 유튜브를 보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뒤늦게 후회한다. 운동하러 나가기 너무 귀찮아 하면서도 막상 운동을 하면 저자가 말하는 행복을 주는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공감을 하고 반성도 하게 되는 챕터였다.

 

전체적으로 단편적인 챕터들로 주제의 일관성이 느껴지지 않고 소로의 월든 이야기가 너무 자주 등장한다. 전체적으로 한 가지 입장만 고수하는 게 아니라 양쪽을 다 옹호하는 회색 의견이 많다. 그래서 나에게는 별 매력이 없는 책이었다. 몇 구절 좋았고 공감하는 부분들이 있었고 독서 모임의 가이드 덕분에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통해 나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된 것 같다.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이 책에서 어떤 것을 느꼈을지 다른 분들의 생각을 통해 내가 사는 세계가 유일하다는 확신이 느슨해지는 순간을 빨리 경험해 보고 싶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