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빌라 / 백수린
문학동네 / 리디북스

불현듯 그녀는 자신이 지금껏 누구에게도 떼쓰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일찍 철이 든 척 했지만 그녀의 삶은 그저 거대한 체념에 불과했음을.
아직은 집에 가지 않을래요 - 백수린
이 책의 마지막 단편,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을 읽으면서 잊고 살았던 초등학교 때 친구가 생각났다.
어린 시절, 모범생이고 반장을 하던 초등학생 시절에 남면에서 전학왔던 통통한 아이. 통통한 얼굴이 붉고 곱슬머리에 눈이 크던 주희. 한 동네에서 오래 알고 지낸 토박이 아이들 틈에 주희는 잘 끼지 못했다. 남자 아이들은 돼지라고 주희를 놀려댔다. 강변에 조립식 집을 지어 살던 주희는 아무리 베풀고 잘해주어도 친구들이 별로 없었다. 주희는 남면의 친구들을 그리워했다. 나도 한 번 주희를 따라 남면에 놀러갔었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낯선 이방인 같았던 주희는 남면에서는 그들 중 하나였다. 노래를 잘하고 목소리가 참 예뻤던 주희. 지금은 무얼하며 살고 있을까?
이 책의 단편들은 매우 다른듯 닮았다. 전혀 다른 이야기 같지만 테마나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할까.
전체적으로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가 주변과 환경 이야기를 쭈욱 늘어 놓고(물론 뒤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한 배경이긴 하지만) 뒤에 가서 중심 이야기를 하는 구조인데 그 주변과 환경 이야기가 지나지게 길고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무언가 핵심적인 사건은 뒤에 등장하는데 그 핵심적인 사건을 가기까지가 길고 핵심적인 사건은 너무 짧게 끝이 나버려서 여운이 덜 남는 느낌.
여름의 빌라도 그렇고 시간의 궤적도 그렇고 고요한 사건도 그렇고 앞의 작품은 대부분 그런 느낌이었다.
가장 즐겁고 재미있게 봤던 이야기는 흑설탕 캔디였다. 이 이야기는 드물게 배경 이야기보다 중심 이야기가 먼저 등장한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할머니의 일기장을 살펴본다는 상황이 매우 흥미로운데 독특한 할머니의 케릭터와 낯선 이국에서 말도 안통해 사전을 찾아가며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을 키워간다는, 흑설탕 탑을 쌓으며 즐거웠다는 그 상황이 눈에 그려져서 참 아름다웠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알았다. 퇴화하는 것은 육체뿐이라는 사실을.(...) 마음이 펄떡펄떡 뛰는 욕망으로 가득차 있는데 육신이 따라주지 않는 것만큼 무서운 형벌이 또 있을까?
나이를 먹어가 노인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사랑할 줄 알고 새로운 것에 설레고 호기심을 갖고, 설레이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거나 이겨내기도 하고. 점차 나이가 들수록 공감간다. 내 마음은 그대로인데 몸이 자꾸만 늙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이 그대로라고 할지라도 사회에서 그 나이에 맞는 행동을 요구하여 거기에 맞추고 세월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상황이 서글퍼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이 좋았는데 앞서 언급했던 주희도 떠오르고 어렸을 때 기억을 생생하게 불러 일으키는 그런 슬픔이 살짝 배어나오는 다정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이별과 이국, 멀어짐과 상실.
이러한 것들을 해설에서 나온것처럼 소극적인 자세로 때로는 덤덤하게 때로는 아쉬워하며 그려낸 여러 이야기들에 나는 문득 일요일 밤, 덩그라니 혼자서 주말 저녁을 맞이하는 것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주희는 어떻게 잘 지내고 있을까?
다미와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해서 반가웠던 유나처럼, 멀리, 저 멀리 지나가버린 유년 시절을 떠올리는 나는
혼자 밥을 먹고 유튜브를 보고 책을 읽으며 새로 시작하는 한 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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