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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3) 문학소설,에세이,시

지구 끝의 온실 - 김초엽

by DORR 2022.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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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 김초엽

자이언트북스 / 밀리의서재

 

 

제목과 표지는 아주 말랑말랑한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야기의 배경은 끔찍한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더스트라는 먼지가 지구를 뒤덮어 사람과 동물, 식물을 모두 죽여가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돔 시티를 만들어 그곳에서 생존한다.

 

이야기는 더스트로 인한 아포칼립스가 종식되고 재건이 된 지 70년, 아영이라는 식물학자가 모스바나라는 식물이 기이하게 급증하는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모스바나를 연구하기 위해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학회에 다녀오며 랑가노의 마녀를 만난다. 랑가노의 마녀들은 에티오피아의 재건에 도움이 된 유명한 사람들로 병원과 의약품이 없던 더스트 종식 이후에도 약초를 이용한 민간 치료로 유명했던 자매를 일컫었다.

자매들은 모스바나로 사람들을 치료했는데 훗날 모스바나를 연구소에서 검사를 해보니 아무런 치료효과가 없었다. 아영은 나오미를 만나서(언니인 아마라는 요양병원에 있다고 했다) 그녀와 프림 빌리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죽음과 가능성이 한 장소에 공존하는 어떤 모순, 죽음 위에 쌓아올려지는 다른 종류의 삶. 어쩌면 이곳 프림 빌리지도, 그런 장소일 수도 있었다.

 

이후 나오미 시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더스트홀 시대의 시작과 종말을 함께 한 나오미는 현재는 90살이 넘는 노인이지만 프림 빌리지에 도착했을 때는 12살의 소녀였다. 자매는 더스트에 저항력이 있는 저항종이라는 이유로 피를 체혈당하고 끔찍한 일을 당했다. 아버지는 자매들을 팔아먹고 돔 시티에 입성했다. 잔인하고 이기적인 사람들만 살아남아 돔 시티에서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연구소에서 탈출해 겨우겨우 아마라와 함께 도망다니며 살아가던 나오미는 프림 빌리지라는 묘한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그떄 나오미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아주 좋은 사람이 타인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매들은 내성종을 착취하지 않고 서로 의지해서 살아가는 부족 마을 프림 빌리지가 마음에 들었다. 그곳에서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갔다. 마을은 독특했다. 마을 끝에 온실이 있고 그 곳에서 레이첼이 식물을 연구했다. 마을의 지도자 같은 인물은 지수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녀는 로봇등 기계를 잘 다뤘고 마을 사람들을 이끄는 존재였다. 하지만 레이첼과 온실은 접근이 금지 되었고 그곳에서 적은 작물과 함께 더스트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분해제를 만들고 있었다. 평화로웠던 마을은 배신과 여러가지 사건들로 점차 분해되었다. 지수는 나오미에게 분해제를 만드는 방법을 주었고 숲을 벗어나 살 수 있는 모스바나를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결국 전부 뿔뿔히 흩어져버렸다.

 

희망이라는 것의 본질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상승할 때는 의미가 있지만, 다 같이 처박히고 있을 때는, 그저 마음의 낭비인 것이다.

 

아영은 나오미의 이야기를 듣고 어린 시절 자신의 옆집에 살던 할머니 이희수가 지수였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그녀는 서둘러 지수를 찾아보지만 그녀는 요양원에 있다가 마지막으로 뭔가를 찾아야 한다며 떠났고 아영은 그녀의 회상 기록을 손에 얻는다. 그 회상 기록의 비밀번호는 레이첼이었다.

 

온실이 마치 이곳의 신전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서야 도달한 결론은, 신전은 지킬 사람들이 흩어지면 그 신전도 의미를 잃는다는 것이었다.

 

아영은 지수의 회상기록으로 레이첼이 사이보그였고 지수는 꾸준히 그녀의 기계를 손봐주고 그녀가 온실에서 연구를 하도록 도와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수는 레이첼에게 끌렸고 그녀가 분해제를 만든 것 처럼 세상을 더스트 폴에서 구해줄 식물을 연구해주길 바랬지만 레이첼은 그저 자신의 식물만이 중요했다.


지구 끝의 온실의 이야기 자체는 별로였다. 세계가 무너지고 더스트폴이 지구를 뒤덮여 인구의 80% 가량이 사망한 아포칼립스의 배경 소설치고는 긴박감이 없다. 이야기는 다소 잔잔하게 진행 되고 시점이 한정되어 있다. 좀 더 나오미의 시선을 본 온실의 비밀과 레이첼의 존재와 더스트 폴과 상황이 일반적인 상상의 범위를 벗어났다면 더 즐겁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주제를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점도 알겠다.

 

천개의 파랑도 그렇고 지구 끝의 온실도 그렇고 읽다가 만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도 그랬다. 다소 미적지근하다.

SF적인 요소들을 배경으로 깔고 있지만, 이야기의 진행 방식은 현대를 배경으로 한 문학소설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SF적인 요소들은 그저 주제를 끌어내기 위한 소품 정도로만 사용되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고 따로 동동 떨어져 있는 듯 하다. 그런 부분이 아쉽다.

 

*SF적인 요소로 최대한 재미있는 책을 읽으려면 역시 앤디 위어의 책이 최고이다, 기발한 상상력과 함께 매력만점 인물들과 유쾌함을 느끼고 싶다면 존 스칼지의 소설을, 철학과 역사와 정치, 종교를 아우르는 진정한 스페이스 오페라를 느끼고 싶다면 파운데이션을 추천하고 싶다!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서 좋은것도 있긴 했다. 취향적인 면에서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100배 더 재미있게 봤지만 감정적으로 주제를 이끌어 내는 면이나 미적, 감정적인 면에서 뛰어났다.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라면 지수가 자신의 정원에서 모스바나의 푸른빛을 보고 있는 모습과 온실에 거대하게 자란 식물들이 폐허 가운데 레이첼이 남아 있는 이미지였다. 두 사람의 아련한 감정과 슬픔이 푸른빛을 내는 모스바나와 닮은 것 같다. 모스바나의 엄청난 번식력까지도. 같은 종이라 바이러스에 쉽게 무너지는 것 또한.

 

어쨌든 저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었어요. 한 사람의 평생을 사로잡는 기억이 있구나. 그건 오랜 시간이 흘러도 옅어지지 않는 것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때는 그 기억이 무엇인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아요. 그리고 그건 당신에게도 꽤 중요한 의미일 것 같아서...꼭 말해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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