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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1) 미스터리,스릴러,추리,공포

킹덤 - 요 뇌스베

by DORR 2022.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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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 요 네스뵈

비채 / 리디북스

 

가족의 강한 유대와 의리가 도덕을 넘어서는 순간이 있다. 이것이 바로 그 이야기다.

요 네스뵈

 


만약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나는 아직 어린 아이고 아버지는 나에게 하늘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매우 다정하고 자상하고 하늘과 같이 우러러 볼 수 있는 존재입니다. 나에겐 나보다 어린 남동생이 있습니다. 잘생기고 사랑스럽고 나를 잘 따르는 남동생. 그런데, 2층 침대에서 자던 나는 아버지가 동생의 침대에 같이 누워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울고 밤마다 아버지는 계속 동생을 찾아왔습니다.


나는 아직 어립니다. 아직 부모님의 그늘 아래에 있는 한없이 약한 존재죠. 나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동생도 사랑합니다. 하지만 동생은 매일밤 아버지 때문에 웁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요? 동생을 위해 아버지를 신고해야 할까요? 아니면 사랑하는 아버지와 가정의 평화를 위해 동생의 울음을 묵인해야 할까요?


아버지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일부러 총을 나의 앞에 두고 갑니다. 그 스스로 방아쇠를 당길 용기가 없어 나에게 그 일을 맡깁니다. 나는 총을 바라봅니다. 사랑했던 아버지, 그러나 추악하기 짝이 없고 혼자 죽음을 택하지도 못하는 용기 없는 남자. 그의 죽음 없이는 이 끔찍한 일이 멈추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다시 총을 바라봅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또 다른 선택이 있습니다.
나는 남동생의 아내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남동생은 자신의 아내와 사사건건 의견이 대립이 있고 그 끝에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그녀는 매우 연약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남동생을 죽여달라 부탁합니다. 더이상은 견딜 수 없다고요. 같이 바로셀로나로 도망가자고 합니다. 동생은...나의 사랑하는 동생과 나의 사랑하는 여자.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요?

 

 

이 모든 선택을 해야 하는 인물은 요 네스뵈의 스탠드 언론 소설 킹덤의 주인공, 로위다. 경제학자이자 록커이자 작가인 요 네스뵈는 국내에는 해리 홀레 시리즈의 스노우맨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번 스탠드언론 '킹덤'은 다른 그의 소설들만큼 엄청난 분량에 호흡을 길게 갖고 있는 장편 소설이다. 영하 25도 노르웨이의 겨울처럼 스산하고 고독하고 외로움에 가득한 로위의 킹덤.

 

킹덤에 대한 평은 극찬이 가득하다. 대하드라마라고 하는 평들도 이해가 간다.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대부와 같은 긴 러닝타임을 갖고 있는 영화 같은 느낌도 받는다.

 

다 읽고 나서는 내내 여운이 남는다. 의도적인 작가의 구성(이야기 초중반에 가족의 비밀을 독자에게 공유하는)과 입이 바짝 마르는 긴장감과 후켄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아찔한 추락, 긴 페이지 동안 저자(요썜)가 치밀하게 설계해 놓은 이야기에 허우적거리며, 저 멀리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 오스와 그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오프가르 농장과 후켄 절벽까지, 생생하게 머릿속에서 그려본다.

 

**전체적인 내용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로위는 농장이 있는 외딴 집에서 가족들과 살아간다. 과묵하고 염치를 아는 자상한 아버지, 아버지의 존재에 가려져(로위에게는 아버지가 너무 거대했다) 있던 어머니, 사랑스러운 남동생 칼. 하지만 열일곱살까지 칼은 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한다. 로위는 한 번, 아버지에게 그만두라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화를 내며 그를 두들겨팬다. 그리고 말한다. 다시 한 번 그런 말하면 죽여버리겠다고, 날 그만두게 하려면 죽여버리라고. 아버지는 그에게 샌드백을 주며 싸우는 법을 알려준다. 마치, 아들이 자신을 죽여 멈추게 해달라고 하듯이. 하지만 로위는 아버지가 자신이고 그가 너무나도 밉지만,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칼에게 찾아와 목을 조르고 형이 어디있냐고 찾았다는 이야기를 듣자 더이상 견디지 못했다. 삼촌의 정비소에서 일했던 그는 차를 손봤다. 아버지 없이는 못산다고 했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후켄 절벽으로 케딜락 드빌과 함께 추락했다.

 

"사랑해, 형. "

"칼, 무슨......"

"맞아! 난 멍청이 바보야. 하지만 형은, 형은 그런 거 신경 안 쓰잖아. 매번 형이 나타나서 나를 구해주지."

 

이제 칼은 울먹거리고 있었다.

 

"로위, 있잖아....나한테는 형뿐이야."

"미안해."

"자라고."

"응,응,알았어. 그래도 로위......"

"응"

"고마워, 고마워. 진짜....진짜...."

"조용히 좀 해라, 응?"

"형이 내 형이라서, 잘자. "

 

칼은 매력적인 청년이 되어 마을에서 가장 아름답고 똑똑한 마리 오스란 여자와 사귀게 된다. 로위는 중고자 딜러이자 유명한 부자인 빌룸센의 아내, 리타 빌룸센과 밀회를 즐기게 된다. 한편, 부모님의 죽음에 의문을 품던 시그문 올센이라는 경찰이 집요하게 형제를 괴롭혔고 칼이 그를 죽이고 만다. 어쩔 줄 몰라하는며 형을 찾은 칼 대신 로위는 시그문 올센의 시체를 후켄 절벽에서 끌어올려 토막 내어 프리츠 세제에 넣어 흔적을 없앤다. 그의 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가 자살로 위장시켰다. 형제에게는 다행이도 사건은 자살로 넘어갔다. 칼이 술에 취해 마리를 두고 그를 짝사랑하던 그레테와 관계를 갖고 그레테는 그것을 소문내 버린다. 마리와 칼은 헤어지고 칼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로위는 혼자 남았고 삼촌이 죽은 후 정비소를 정리하고 주유소의 매니저로 일하며 자신의 주유소를 차릴 소박한 꿈을 꾸고 있었다.

 

칼이 15년만에 아내 새년와 함께 마을 사람들의 투자를 받아 호텔을 지을 계획을 가지고 돌아온다. 로위는 15년 전 칼과 사귀던 마리 오스를 짝사랑했던 것 처럼 섀년에게 점차 빠져들어간다. 그녀를 향한 마음을 감당하지 못한 그는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한 뒤, 집을 떠나 다른 주유소로 직장을 옮긴다. 칼은 여전히 투자가 잘못되거나 문제가 생길 때 마다 로위에게 도움을 청한다. 시그문 올센의 아들 쿠르트 올센은 아버지가 쫓던 로위의 부모님 사건과 함께 자살한 자신의 아버지 사건에 의문을 갖고 있었고, 로위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칼은 호텔의 진행에 문제가 생기고 설계를 담당했던 섀년과 계속 갈등을 빚는다. 섀년은 칼이 이곳으로 돌아온 후 마리 오스와 바람이 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칼의 바람은 꾸준히 있어왔다. 그녀는 로위에게 연락했고 노토뎀에서 그와 관계를 갖는다. 빌룸센에게 돈을 빌리며 공사를 했지만 호텔에 불이 나고 다음날 빌룸센이 보낸 덴마크 사람 해결사가 나타났다. 그는 돈을 갚으라고 위협하며 돈을 갚지 않으면 칼의 아내가 먼저 죽을거라고 협박을 한다. 그가 떠나가기 전, 로위는 그의 차가 여름 타이어를 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영하 25도의 날씨에 양동이에 물을 뿌려 길을 얼려 놓는다. 해결사의 차는 그들의 부모님이 떨어졌던 그 후켄 절벽으로 떨어진다.

 

이제 그들은 빌룸센을 찾아가 아내 리타를 죽이겠다고 협박해 빌렸던 돈을 탕감하고 새로 3천만(한화 약 40억) 크로네를 새로 빌려준다는 문서에 서명하도록 시킨다. 서명을 하자 그를 죽이고 자살로 위장하지만 쿠르트 올센이 의심하고 찾아온다. 하지만 빌룸센을 죽인 살인범이 덴마크의 해결사라고 사건이 결론내려진다.

 

로위는 호텔이 완공이 끝나면 섀년과 이곳을 떠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섀넌은 아버지가 킹덤이라 부르던 농장과 로위의 땅, 호텔이 지어지는 그 땅의 명의가 칼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고 알렸다. 칼이 형의 서명을 위조해 자신 개인 소유로 돌렸던 것이다. 게다가 섀년은 임신 소식도 알렸다. 칼이 섀넌의 임신 문제로 로위를 찾았다. 그녀가 자신과 쭉 관계를 하지 않았고 딴 놈의 아이를 임신했는데, 노토뎀에 갔을 때 영화배우를 만나 그의 아이를 갖은거 같다고 로위에게 말했다. 로위는 점차 초조해졌고 섀넌의 부탁에 결국 동생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부모님때처럼 칼이 탈 케딜락을 손보았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섀넌의 연락을 기다리던 중 그는 칼의 전화를 받는다.

 

16년 전, 경찰을 죽이고 전화를 걸었을 때처럼 절망한 동생의 목소리. 그는 몸을 떨면서 로위에게 고백했다. 섀넌과 싸우고 호텔에 불을 낸 것이 그녀라는 사실을 알고 그는 다리미로 그녀를 때렸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 불이 꺼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케딜락의 트렁크에 그녀를 넣어두었다. 순간 칼을 죽이려던 로위는 케딜락의 앞좌석에 그녀를 태우고 칼을 떨어질거라 계획했던 후켄 절벽으로 그녀를 밀어넣었다.

 

 

**

 

책을 다 읽고나서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로위는 그의 아버지를 닮은 인물이다. 외로워하면서도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한다. 묵묵하게 혼자서 자신의 할 일을 한다. 폭력적인 성향을 갖고 있고 싸움을 좋아한다. 칼에 대한 사랑, 질투, 책임감 등 여러가지 감정들이 지독하게 얽혀있다. 그는 자신의 킹덤 안에서, 가족 안에서, 사랑 안에서 한없이 강한 사람이다. 그것들을 지켜 내기 위해 서슴없이 다른 사람을 해한다.

 

가족이 옳고 그른 것보다 먼저였다. 전 인류보다도 먼저였다. 그리고 세상은 항상 우리와 세상 모든 사람의 대결이었다.

요 네스뵈 / 킹덤

 

앞선 질문을 나에게 던져본다. 내가 겪어본 일이 아니라 상상도 하기 힘들지만, 매번 다른 선택지가 나타난다. 나였다면 진작 신고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그랬다면 사랑하는 부모님과 완전한 가정이 박살나겠지. 나에게는 아직 부모님이 필요하니까. 그러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래도 반대 입장으로 내가 학대를 받는다면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선택은 계속 반복된다.

 

참, 이상하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로위는 용서가 안되는 끔찍한 살인마인데, 소설 속의 로위는 그저 고독하고 쓸쓸하고 가족에게 충실한 불쌍한 한 남자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내내 그의 범죄가 드러날까 덜덜 떨게 된다. 장담하건데,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또 그런 부분이 소설속에서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칼을 향한 로위의 집착에 가까운 질투 또한 의미심장하다. 로위가 사랑한 여자들은 전부 칼의 여자였다. 그녀들이 칼의 여자가 아니었다면 로위는 그녀들을 사랑했을까?

 

로위의 선택은 항상 가족이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는 가족이라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그렇지만, 이 긴 책을 모두 읽어내면서 나는 로위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가 그런 사람이므로.

 

집이 텅 비었다. 나는 혼자였다. 이렇게까지 혼자였던 적은 없었다. 우리가 모두 주위에 있는데도 아빠는 이런 기분을 느꼈던 걸까?

그래, 무자비한 봄이 또 다가오고 있다.

 

다행이 나에게는 이토록 극단적이고 무겁고 끔찍한 선택을 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본다. 가족이라는 신념, 혹은 다른 무언가를 향한 맹목적인 신념이 올바른 선택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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