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나무옆의자 / 밀리의서재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가는 곳임을.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님을.
도입부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확 사로잡혔다. 지갑을 잃어버린 편의점 사장 염여사님과 지갑을 주어준 노숙자. 이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사이에 인연이 생기고 자신을 독고라고 칭하던 노숙자는 편의점 야간 알바생이 된다. 기이한 인연이 죽어가던 한 사람의 삶을 조금씩 회복시켜준다.
이 과정까지 읽자 뒷 이야기는 슥슥 읽혔다. 앉은 자리에서 3시간만에 한 시도 쉬지않고 읽을 수 있었다. 1챕터 염여사와 독고의 만남 이후로는 편의점에 관련된 사람들 즉, 오후 알바 시현, 오전 알바 오여사, 편의점 손님 인경, 경만, 염여사의 아들 민식, 새로운 야간 알바생 곽 이렇게 쭉 편의점을 둘러싼 알바생과 손님들,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의 주인공 독고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지난 가을과 겨울을 보낸 ALWAYS 편의점에서. 아니 그 전 몇 해를 보내야 했던 서울역의 날들에서. 나는 서서히 배우고 조금씩 익혔다. 가족을 배웅하는 가족들, 연인을 기다리는 연인들, 부모와 동행하던 자녀들, 친구와 어울려 떠나던 친구들...... 나는 그곳에서 꼼짝없이 주저않은 채 그들을 보며 혼잣말하며 서성였고 괴로워했으며, 간신히 무언가를 깨우친 것이다.
독고의 고백처럼, 그는 편의점에서 관계와 소통을 회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여기서 그가 새로운 삶의 꽃을 피우는 장소가 편의점이라는 점이 참 의미심장하다.
편의점이 어떤 곳인가. 매일 오가는 사람들도 잠시 들려서 필요한 물건만을 빠르게 구입하고 사라지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용무만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주의를 표방하는 대표적인 장소인 편의점을 배경으로 이토록 따뜻하고 다양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더욱 이 이야기를 훈훈하게 만든다.
밥 딜런의 외할아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누구나 행복할 수 있고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행복의 정의는 개개인마다 다르지만, 작고 소소한 것에서 적극적으로 행복을 느낀다면 훨씬 행복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바로 이 전에 읽었던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사람이 행복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사람'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이야기였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이야기의 시점이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등장하기에 어느 인물에도 이입을 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중심 인물은 독고지만 독고의 시점 이야기는 가장 마지막에 진행되고 각자의 사람을 통해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이다. 게다가 마지막 독고 시점의 이야기를 보자면 다른 사람들에게 비쳐지는 모습과는 갭이 크다고 할까. 강하고 위협적인 외모와는 달리 어눌하고 훈훈하던 그의 시점은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독고가 아닌 의사로의 모습은 지금껏 보여주고 상상하던 사람과는 너무 달라서 낯설고 그래서 이상했다. 게다가 극중 상황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곽이 갑자기 편의점 직원이 된다던가 시현이 나가게 된 이야기, 등등 과장이 심하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상황들이 몰입을 떨어뜨리고 고개를 살짝 갸웃하게 했다. 세심하고 차근차근 쌓여가는 상황과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변화를 해가야 더 감동이 클텐데 그런 부분에서 좀 아쉬웠다고 할까. 코로나의 상황과 연결 짓는 것도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훈훈하니 재미있으면서도 소소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라 즐거웠다.
이전 작 고스트 라이터즈를 보면서 아쉬웠던 부분들이 많이 채워졌고 행복에 대한 주제는 좀 더 확장되고 공감을 보태 나타났다.
나는 자신이 굉장히 개인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성향은 인간 관계에서도 나타나듯이 한 사람의 가족, 한 사람의 친구, 한 사람의 애인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부류라고 할까. 다수의 지인보다는 소수의 정예멤버가 훨씬 이롭다고 생각하는 류였다. 어차피 의미 없는 친분이나 인간관계 따위 이득보다는 감정적인 소모와 실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제와 열심히 인맥을 넓히거나 친구를 사귀려고 애를 쓴다거나 그럴 의도는 없다. 다만, 우연히 만나게 되고 스치게 되는 인연들을 조금 더 넓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저 스쳐가는 인연도 그 의미가 있고 작은 의미가 삶에서 큰 위로나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훨씬 넓어졌다고 할까. 시작도 하기 전에 선을 긋는 행동은 지양하기로 했다.
독고는 나를 살리려던 기술로 남을 살리기 위해 살기로 마음을 잡는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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