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 / 배준
자음과모음 / 리디셀렉트
사실 이 책은 오랜만에 한가한 저녁을 즐기고 운동을 마치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엎드려 리디페이퍼로 책을 읽다가 본 책이다.
3일 전부터 읽던 100세 노인을 다 읽고, 2일 전에 읽던 올리버 트위스트를 다 읽고, 한국 소설을 읽고 싶어 리디셀렉트의 목록을 쭉쭉 내려가며 (리디 셀렉트에는 한국 소설 수가 굉장히 적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르 소설 제외하고 순수 문학 소설 말이다) 발견한 소설이다. 그 자리에서 단숨에 두어 시간만에 책을 완독했다. 재미있고 궁금해서 멈출 수 없었다. 오늘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었고 조금 과하다 싶은가 하면 기묘하게 뒤통수를 치는 것 같은 풍자와 시트콤 같이 어이없고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 진정으로 유쾌했다.
시작은 아무도 안 쓸 것 같은 상담실에 고등학생 커플이 들어와 사랑을 나누려고 한다. (고등학생들인데 헉 했다...) 하지만 교무실의 고장난 에어컨 덕분에 선생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몰려와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게 되고 커플은 테이블 아래로 숨어 들어가 몸을 숨긴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젊은 남여 선생 둘이 핸드폰을 찾으러 왔다가 다시 불길이 튀고 그들도 사랑을 나누려고 한다. 하지만 그 때 다시 상담실 안으로 선생님과 상담하러 온 연아의 어머니가 들어온다.
두 선생님 커플도 테이블 아래로 숨으려 하다가 고등학생 커플과 마주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몸을 포개고 좁은 테이블 아래 결국 네 명의 남여가 숨어 있는다. 그리고 개별적인 인물들의 개별적인 상황이 펼쳐지지만 기본적으로는 연아와 그녀의 어머니의 갈등이 주된 흐름이 된다.
연아는 전교 1등을 하는 똑똑한 여학생이지만 그녀의 어머니의 욕심은 끝이 없다. 기숙 학원으로 보내려고 하며 최소한 서울대 아니 이왕이면 하버드 대학교나 세계 최고의 대학에 딸을 보내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 다른 어떤것도 중요하지 않다. 다 너를 위해서라며 강요하는 어머니와 연아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그녀의 아버지와 남동생이 말려 보지만 결국 연아는 집에서 뛰쳐나간다.
웅이와 혁의 이야기, 민준과 다정의 이야기를 통해 학교 안의 변태 이야기를 납득하게 되며 연아의 상황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이 시트콤 같은 모든 상황의 집약은 마지막 챕터, 각서에서 나타난다. 상담실의 커튼과 긴박한 상황에서 모두 합심하여 목숨을 구해내는 상황은 그 모습이 영화처럼 생생하게 그려져 큰 웃음을 자아낸다. 정말로 유쾌하다.
하지만 각 챕터마다 집요하고도 날카롭게, 하지만 과하지 않을 정도로 비판적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현실을 풍자한 소설이다.
오로지 섹스만 머릿속에 들어찬 개념 없고 무지하고 철 없는 웅이, 혁이 말리지 않았다면 연아는 끔찍한 일을 당했을 지 모른다. 원조 교제를 하다가 온갖 고생을 당하고 생매장 당할 뻔하지만 결국은 변태로 몰려 경찰에 잡혀 간 원조 교제 남자와 그 남자를 묻으려고 했던 민준과 다정, 딸에게 자신을 투영해 꿈을 이루려고 하지만 실제로 자신은 남편을 두고 SM플레이를 하며 바람을 피는 연아의 엄마 등등.
결국 연아의 엄마의 심정을 연아가 조금이라도 알아주며 (실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거라고 했던 연아 엄마의 입장을 독자인 내가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수업으로 돌아가고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며 이야기는 매듭을 짓는다.
어떻게 설명을 해도 이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과 가치를 잘 표현하기 힘들 것 같다. 그저 직접 읽어보고, 낄낄 웃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찡하기도 한 감정을 직접 느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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