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 권일용, 고나무
알마 / 리디셀렉트
느닷없이 2018년 출간 된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동명의 SBS 드라마 때문이다.드라마의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하고 우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앞으로 내가 가야 될 길은 이렇게
아무도 듣지 않으려 할 이야기,
너무나 잔혹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길이구나,
이런 이야기를 내가 끌어안고
살아야 되는 거구나
국내 1호 프로파일러로 유명한 권일용 교수.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표창원 소장과 함께 프로파일러 1세대로 널리 알려져있다. 이 책은 권일용 형사가 프로파일러가 되기 전부터 겪는 당시 수사 환경과 열악하다면 열악한 환경에서 결국 프로파일러로 성장하고 유영철과 정남규 등의 연쇄 살인범을 잡아낸 과정 등을 다루고 있다.
마치 소설을 보듯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히는 이야기다. 뭐랄까, 철저히 인터뷰와 구술을 바탕으로 기록식으로 서술 과정이 이어져서 '이야기'같다는 느낌이 든다. 워낙 유영철, 정남규의 범죄 행각과 잡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이야기들이 많아서 수사 과정에 대한 내용보다는 프로파일러들의 일, 고뇌, 갈등, 어려움, 문제점, 소명, 헌신, 노력, 상황 등을 심도있게 다루었다.
2006년 11월 본청에 사상 처음으로 프로파일링 조직인 범죄행동분석팀이 신설됐다. 서울지방경찰청 범죄분석팀 소석이던 권일용은 경위로 특진한 뒤 12월 1일 범죄행동분석팀장으로 인사 발령을 받았다. 드디어 프로파일링의 필요성이 조직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토록 범죄행동분석팀이 생기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존재한다. 독특한 이름의 윤외출(드라마 내에서 국영수)과 권일용 두 형사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후에 등장한 많은 범죄자들을 잡는 일은 좀 더 까다로운 일이 되었을 것이다.
권일용은 지역의 형사들과 잘 어울렸다. 심리학 석사 학위 소지자들은 좀체 잘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서민 집안의 아들, 공사장 아르바이트로 어머니 약값을 드리고 군대를 갔던 남자, 먹고살기 위해 경찰 시험을 쳤던 청년, 시장에서 칼을 들고 싸우는 잡부들과 부대끼던 전직 형사기동대 출신의 프로파일러는 현장 경찰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었다. 권일용은 프로파일링 결과를 계몽적으로 통보하기보다 데이터와 기존 사례를 근거로 설명하고 설득했다.
경찰 및 검찰이나 여러 국가 조직들은 미디어에서 항상 딱딱하고 유동적이지 못하고 보수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로인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개혁과 발전 하고자하는 소수의 의견들이 묵살되고 강압, 폭력 수사, 전관예우 같은 부정적인 모습을 반복해 비춘다. 물론 대부분의 조직원들이 충실하게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을테지만, 변화는 더디고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변화, 시대의 흐름에 맞추기가 어렵다. 그 와중에 두 분의 범죄행동분석팀의 신설을 위한 노력은 얼마나 까다롭고, 그 실적이 인정받고 모든 것이 받아들여져 지금에 이르기까지 숱한 땀과 피가 흘렀을 것을 예상해볼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노력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권일용은 후배들에게 자신의 중암갑을 다 털어놓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건 무능한 리더가 하는 행위였다.
물론 개인적인 여러 이야기들도 있다. 특히 팀의 리더를 맡으며 느끼는 중압감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직접 수사하는 형사와는 달리 이들은 계속 범죄를 바라보고 상상하고 다각도로 생각하고 범죄자가 되어보고 하는 여러 과정을 거친다. 그들이 내린 정보는 범인을 잡는 핵심 포인트가 되기도 하지만, 만약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시간을 허비하며 다른 피해자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압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 같다. 스트레스가 엄청 많을 것이고 그 팀의 리더역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을거다.
권일용은 독자에게 여러가지 경고와 당부를 남기기도 한다.
_연구 결과를 보니 아이들이 가장 많이 유인되는 게 구호 요청이에요. 아동성범죄자들이 구호 요청을 하면 아이들이 잘 따라온다는 것을 알고 자주 수법으로 쓰죠.
_성폭행 피해자는 '확 물어버리고 소리를 지르지, 왜 그걸 못했어'라고 추궁하는 게 여전히 문젭니다. 그건 불가능한 겁니다. _사형 반대론자들의 논리 중 하나가 오심 가능성이다. 그러나 스스로 범행을 자백해 오심 가능성이 없는 야수, 교정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 야수, 피해자의 유가족이 사형을 요구하는 야수에 대해서도 한국 사회는 1998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
는 백미러로만 범죄를 바라보면, 범죄 현상을 다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 관점의 사각지대에 숨어 우는 건 범죄 피해자들과 유가족이다.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의 범죄 피해자들은 나의 이웃들이었다.
이 구절에서는 나도 반성했다. 범죄의 뒤에는 항상 피해자가 남는다. 그 피해자는 내 가족과 이웃, 내가 될 수도 있다. 꼭, 명심하자.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자들을 재미있게 시청했다. 실제(책)과는 여러모로 매우 다르다. 주인공 송하영 형사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고, (지나치게) 잘생겼고(ㅋㅋ) 경찰내에서 따돌림을 받는다.(본인이 따돌린다가 더 적당하다) 실제 권일용 형사는 두루두루 잘 지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마찰이 있긴 했을지 모르지만 송하영 형사의 극단적인 상황은 케릭터의 성격이나 성향을 극대화 하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윤외출을 모델로 한 국영수(이름이 독특한 점도 닮았다)란 인물도 퍽 매력적이다.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씌여진 드라마지만, 책과는 상당히 다르다. 기본적인 그러니까 심층적인 주제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완전히 '이야기'적인 플롯으로 풀어나간다. 하지만 결국 다다르는 본질적인 면에서는 똑같은 곳에 닿을 것이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고충과 그들의 노력, 악의 마음을 읽기 위해 잠시 나마 악 속에 발을 담그는 그들은 상상하기 힘든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을지라도, 그로인해 우리 사회와 우리의 삶이 조금 더 안전해졌다는 사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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