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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5) SF,디스토피아,판타지

잔류 인구 - 엘리자베스 문

by DORR 2022.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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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인구 / 엘리자베스 문

푸른숲 / 밀리의서재 

 

밀리의 서재 오리지널 도서이다.

밀리의 도서 앱은 아직까지도 짜증유발 1위 앱이지만(그만큼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는 뜻이다) 책이 많아서 끊을 수 없는 애증의 앱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리지널 도서의 퀄리티가 좋아서 감격스러울 때면 어쨌든 밀리의 서재에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잔류 인구, 제목만 봐서는 특별한 매력이 없지만 이야기의 소개글을 보면 눈이 확 떠질만큼 흥미롭다.

먼 혹은 가까운 어느 미래, 인류가 지구를 떠나 정착할 만한 행성을 발견하고 그곳에 콜로니를 건설해 살아온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고 번식(?)을 하며 인구수를 늘이며 살아가지만 그들이 선택한 콜로니는 열대성 폭풍과 폭우로 콜로니 인원들이 줄어갔다. 결국 콜로니를 철수 시키기로 결정하게 되지만 오필리아는 혼자 콜로니에 남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이 곳에서 40년을 살아왔다. 남편과 아들과 딸을 잃고, 하나 남은 막내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살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다. 누가 무어라고 말하고 지시하고 잔소리 하는 것도 싫었고 혼자 남아 편안히 지내다가 죽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 남는 것도 편안히 지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콜로니 반대편에 다른 정착민들이 도착했지만 괴동물들이 그들을 말살해 버렸다. 반대편 상황을 통신으로 듣고 있던 오필리아는 이 끔찍한 상황도, 40년간 지내온 콜로니에 자신들을 제외한 다른 지적인 외계인이 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그 믿을 수 없는 상황은 괴동물들이 오필리아를 찾아오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이 귀찮고 끔찍하고 냄새나고 희한한 외계인은 오필리아를 몹시도 귀찮게 했지만 그들은 오필리아를 존중했다. 사실 어떤 사람들보다도 그녀를 잘 이해하고 존중했다.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는데 그 포인트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이런 부류의 SF이야기를 너무 좋아한다! 게다가 노인이라니!!!! 노인의 전쟁 이후 노인이 주인공인 SF 이야기라니!!! 나는 흥분과 기대로 이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필리아는 호락호락한 노인네가 아니었다. 다정하고 나긋나긋하고 현명한 할머니가 아니었다. 매우 독립적이고 예의를 차리고 지혜롭고 까다롭고 괴팍한 면도 있는 할머니었다. 전형적인 주인공 스타일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혼자 남은 할머니가 알뜰살뜰 콜로니를 잘 꾸려나가는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물론 일정 부분은 그런 면이 있지만, 내가 원하고 기대하던 그런 아기자기함은 없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어쩌면 현실적일지도 몰랐다. 할머니 혼자 수십명이 살던 콜로니를 어떻게 꾸려 나가겠는가. 혼자 발전기를 돌리고 센털르 정비하고 그런 것만도 힘겨울텐데, 소와 양을 챙기고 여전히 농사도 지어야 하고. 괜히 오필리아가 금세 피곤해하고 관절이 아프고 하겠는가. 그럼에도 비오는 날 도료를 손에 묻히고 뛰어 다니는 그녀의 모습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괴동물들, 외계인이 등장하고 나서도 그랬다. 로키와 그레이스처럼 금세 친해지고 호감을 갖고 그럴줄 알았다.(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두 주인공) 할머니 특유의 보듬기와 길들이기기 이루어질거라 예상했다. 그 예상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할머니는 외계인을 극도로 경계하지만 결국 그들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곳에는 그들이 오필리아를 존중해주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사적 공간을, 시간을, 여러 가지들을. 물론 파란 망토가 등장해서 소통이 되기 시작하면서 더욱 그랬다. 키라 무리가 등장하고는 더더욱 화가 났다. 오필리아만큼 나도 그들이 싫었다. 존중할 줄 모르는 예의 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때로는 가족들보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존중해주는 타인이 나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괴동물들은 아니 외계인들은 미개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저자의 시선도 그랬다. 외계인의 눈으로 인간을 들여다보았고 묘사한다. 그 부분은 매우 신선했다. 많은 SF 소설과 매체 속 외계인들은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이 소설 속의 외계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하나의 객체로, 지구의 생물과는 동떨어진 개체로 그렇게 등장한다. 심지어 그들은 인류보다 똑똑하고 놀라운 존재로 묘사된다.

오필리아는 자식들이 질문했을 때 화가 났던 모든 순간을, 괴동물들의 선을 넘는 호기심에 화가 났던 모든 순간을 떠올렸다. 그런 식으로 자기 자신도 윽박지르며 살아왔다. 배울 수 있었던 온갖 것들을 배우지 못하게 막았다. 그래야 한다고 믿었던 때도 있었다. 아이들이 시간낭비를 하게 둘 순 없아고, 필요한 것만 가르치지 않으면 결코 규율을 익히지 못할 거라고, 그는 기억 속에서 환한 얼굴을, 반짝이는 눈을 봤다, 열의에 찬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또한 떠올렸다. 아이들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그토록 왕성하던 호기심과 열의가 소극적인 복종의 틀 속에 들어가 버린 것을. 단념해야 했던 만큼 많이 혹은 적게 시무록해져서.

이 이야기는 결국 오필리아의 성장, 아니 회귀라고 할까. 그녀가 본인 자신의 모습을 찾아 되돌아 가는 이야기라고 하고 싶다. 그렇다. 어머니로, 어른으로, 노인으로 살아오면서 포기하고 양보했던 그 모든 굴레들을 벗어 던지고(그녀가 자신의 옷을 훌훌 벗어 던졌듯이 말이다)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자생종(괴동물이라고도 하고 ㅎㅎ)들이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고 많은 것을 주고 받았지만 결국 그녀가 얻어낸 것은 잊고 있던 자신...열의에 찬 목소리, 환한 얼굴, 반짝이는 눈을 한 자신이었다.

여러가지 새로운 시선과 생각할 거리와 재미와 흥미로움을 주었던 이야기였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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