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 서머싯 몸
민음사 / 리디북스
과거에 이 책을 읽었었다. 이 소설이 고갱의 삶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것과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섬으로 들어가 그림을 그리다 그 곳에서 죽었다는 것, 고갱 그림의 강렬한 색채만 떠올랐다.
굿나잇 독서 모임을 통해 다시 읽게 되었다. 꼭 한 번 다시 읽고 싶은 책이기도 했다.
다시 읽어보니 예전에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은 여전히 강렬하게 다가왔고 전혀 색다르게 다가온 것도 있다.
'나(화자)'는 젊은 소설가였고 예술가에게 관심이 많던 스트릭랜드 부인을 소개 받고 그녀와 가까워진다. 그녀에게는 증권 중개인인 남편이 있고 두 명의 자식이 있다. '나'는 찰스 스트릭랜드와 식사도 한다. 그는 별 특징없는 매우 평범한 사람이었다.
불현듯 찰스 스트릭랜드가 가족과 부인을 모두 버리고 파리로 떠나고 '나'는 스트릭랜드 부인의 부탁을 받아 파리로 찰스 스트릭랜드를 만난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 따위도 중요치 않았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나'는 스트릭랜드를 설득하는데 실패한다. 약 오 년 후, '나'는 파리에서 스트릭랜드를 다시 만난다. '나'에게는 더크 스트로브라는 친구가 있는데,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고 한심한 어릿광대 같은 사람이었다. 그림 솜씨는 형편 없는 화가였지만 그의 그림은 잘 팔렸다. 열정 넘치고 무엇보다 예술을 보는 눈은 매우 날카로운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자기를 제물로 삼아 이런저런 장난으로 끊임없이 놀려댈 때마다 그는 늘 괴로워하였다. 그러면서도 마치 일부러 그러하듯, 그는 놀림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상처를 입으면서도 워낙 천성이 착하여 앙심을 품는 법이 없었다. 그도 독사에 물리는 일이 있으련만 그런 체험도 소용이 없었다. 고통이 가시자마자 또다시 독사를 가슴에 가정히 껴안는 것이었다. 그의 인생은 익살극의 소란스런 대사로 가득 찬 비극과 같았다. 나는 그를 비웃지 않았으나 대놓고 그렇지 않았을 뿐, 그를 안쓰럽게 생각하면서도 그 애처러운 상황에 웃음을 터트렸다.
스트릭랜드는 5년 사이에 형편없이 마르고 궁핍하게 그림을 그려 나가고 있었다. 그의 그림은 끔찍한 작품으로 취급받지만 스트로보만은 그가 천재이며 언젠가는 그 천재성을 인정 받을 것이라며, 그의 그림을 미리 사두라고 까지 했다. 는 '나'는 그와 체스를 두고 가끔 만나 저녁을 사주기도 하면서 지냈다.
스트릭랜드가 병이 나서 죽을 것 같자 스트로보는 싫다는 아내를 설득해 그를 자신의 집에 옮겨 병간호를 한다. 지극한 병간호 끝에 스트릭랜드가 회복하자 그의 아내 블란치는 스트릭랜드를 사랑해서 그를 따라 떠나겠다고 한다. 그녀의 불행이 불보듯 뻔해 스트로보는 그녀를 말리고 애원했지만 그녀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바보같은 스트로보는 더러운 다락에서 살 그녀를 걱정해 자신이 나갈테니 스튜디오에서 스트릭랜드와 함께 지내라고 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스트릭랜드에게 버림 받는다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현대에 스트로보 같은 사람이 있다면 거의 성자와 같은 느낌일 것 같다. 반면 타고난 익살스러움과 우스꽝스러운 그를 우습게 여기는 '나'의 마음도 이해한다.
스트로보의 끝없이 타인에게 나누어 주는 마음이 타고난 성품인지 무언가를 원하거나 채우기 위한 마음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가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스트릭랜드에게 버림 받은 블리치의 자살 이후에도 그에게 자신과 함께 네덜란드에 가서 살자고 한다. 스트로보의 우스꽝스러움과 더불어 구제불능인 '너그러움'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안타까웠다.
소설 속 '나'는 스트릭랜드에게 경멸을 드러낸다. 그를 냉담한 이기주의자라고 혐오하지만 스트릭랜드는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푼어치도 신경쓰지 않는다. 스트릭랜드는 사람의 의견, 자존심, 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심지어 죽음조차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육체와 결부된 존재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위대한 무엇인가를 향해 뜨겁게 타오르는, 고뇌하는 영혼이 그것이었다. 나는 표현 할 수 없는 뭔가를 추구하는 혼을 언뜻 보았던 것이다. (...) 나는 육체를 벗어난 하나의 혼과 대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트릭랜드에게는 색채와 형태들이 어떤 특유한 의미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자신이 느낀 어떤 것을 전달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고, 오직 그것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그림들을 그려냈던 것이다.
'나'는 스트릭랜드는 불쾌한 사람이지만 위대한 인간이었다고 생각했다. 소설속의 '나'와 소설을 읽고 글을 쓰는 나의 생각은 일치한다.
'나'는 이후 스트릭랜드를 만나지 못하고 캡틴 니콜스를 통해 야간숙박소에서 지내던 스트릭랜드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부테리의 거리의 술집 묘사는 굉장히 생생하다. 좁고 지저분하지만 생기가 넘치는 그 곳에서의 패싸움이 눈 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스트릭랜드는 터프 빌이란 사람에게 목숨을 위협받아 오스트레일라아 행의 배를 타고 타히티 섬으로 향한다.
'나'는 '아브라함'이라는 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성 토머스 병원에서 직책을 맡아 승승장구하며 잘 살 수 있었던 그는 휴가를 떠나 알렉산드리아에 정박한 후 그 곳에 완전히 매혹되어 정착한다.
그때 무엇인가 그에게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뭐라고 표현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천둥벼락 같은 것이었다고 할까. 하지만그렇게 말해 놓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건 하나의 계시와 같았네, 하고 고쳐 말했다. 무엇인가 가슴을 뒤트는 것 같더니 돌연 어떤 환희의 느낌, 벅찬 자유의 느낌이 가득 차오르더라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이 겪은 이 환희의 느낌은, 뭐랄까. 한 번이라도 그러한 느낌을 경험해 본 사람이 있다면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느낌은 짧고 강렬한 쾌감 같은 것이 아니다. 온 몸을 관통하며 머리를 꿰뚫는, 지금까지의 삶을 다르게 바라보고 새로운 삶을 향하게 하는 삶의 부표 같은 것이다. 그것을 위해 뱃머리를 돌려 새로운 삶을 향해 항해 할 수 있는 강력하고도 무서운 경험이다.
타히티에 정착하게 된 스트릭랜드는 아타라는 여자아이를 소개받아 길에서 외진 곳에서 살게 된다. 아타와 함께 살게 된 삼 년이 스트릭랜드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였다고 '나'는 말한다. 그는 먹고 사는 걱정 없이 아타의 보살핌 속에서 (물론 아타는 그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혼자 두었다) 마음껏 그림을 그렸다. 문둥병에 걸려 죽기 전까지 눈이 멀고서도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의 죽음은 비참하지만 그가 남긴 것은 그렇지 않았다.
닥터 쿠트라가 스트릭랜드의 죽음을 목격한 그 곳 벽에는 방바닥에서부터 천정에 이르기까지 기이하고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운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외경스럽고 아름다고도 비밀스러운 것. 일년 가까이 눈이 멀어서 앞을 보지 못했으면서도 그가 남긴 그림들.
내가 예전에 읽었던 달과 6펜스에서도 이 장면만은 고갱의 그림과 함께 이미지처럼 기억에 남아 있었다.
예술을 향한 열정. 스트릭랜드는 대책없이 형편없는 사람이었음에도 나는 소설 속 그에게 매력을 느꼈다. 그가 쫓고 있는 '달'의 세계가 '6펜스'의 세계보다 매혹적이었다. 내가 현실감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진실, 예술, 감동, 가치, 아름다움, 진리, 깨달음 같은 것은 즉, 시대와 공간을 뛰어 넘어 오랜 시간동안 그 가치를 증명한 여러 것들을 추구하는 삶에는 많은 희생이 따른다. 스트릭랜드처럼 그것 외에 다른 모든 것, 죽음까지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 극단적인 삶을 사는 이들도 존재한다. 현실적으로 그러한 삶을 살기는 힘들겠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 마지막 한 방울까지 연료로 소진하여 완전 연소를 할 수 있는 그러한 열정은 아름답다. 눈물이 차오를 정도의 감동을 주기도 한다. 아마 현실의 삶에서는 불가능하여 아름답다 여기며 동경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준 책이었다. 무엇보다 고전치고는 평명하고 주제가 확실해 읽기 쉽고 즐거웠던 점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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