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 이길보라
문학동네 / 리디북스
독서모임 책이라 읽게 된 에세이다.
독특한 이력의 저자의 프로필이 인상적이다. 코다(CODA - Children Of Deaf Adult)인 이길보라는 고등학생 때 아시아 8개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났고 로드스쿨러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반짝이는 박수소리란 다큐를 제작했고 같은 제목의 책도 냈다.
이 책은 그녀가 네델란드로 유학을 가게 된 계기와 배경, 그리고 유학생활을 통해 느끼는 점들을 담았다.
책에서 몇 번이나 언급되었듯이 세계 최초로 동성 결혼이 합법이 된 나라. 총리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나라. 네델란드는 나에게 자유로움과 폭넓음, 가능성이 가득한 나라였다. 만약 이민을 가게 된다면 네델란드로 가고 싶다 생각했고 네델란드도 다른 유럽 나라들처럼 인종차별이 심하고 네델란드 드라마를 보니 한국이나 네델란드나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여튼, 네덜란드에서의 삶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새로웠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저자가 유학생활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사람들을 통해 깨닫게 되는 여러 순간들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떤 것을 다루어야 하는 걸까
농인 자녀로 살아왔고 학교를 그만두고 배낭여행을 떠났다는 그녀의 스토리는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불러 일으켰고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낯설고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녀는 통하지 않는 자신의 이야기 대신 어떤 것을 다루어야 할지 막막해졌다. 큰 중심점이 달라진 상황. 이 부분은 절박하면서도 희망적이고 충격적이었다.
그녀의 석사 동료 중 야핏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석사과정을 시작하며 새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술을 끊고 채식을 한다. 늘 수업에 늦는 나쁜 버릇도 고치고 30분 일찍 도착해 다른 사람을 위한 시간으로 삼았고 야핏은 그 모든 것을 지켰다. 야핏의 결심과 결심을 지키려는 점은 크게 인상적이지 않다. 하지만 항상 수업에 늦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30분 일찍 도착해서 다른 사람을 위한 시간으로 삼는다는 것이 존경스러웠다. 나쁜 버릇을 고치는 데 끝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사람을 위한 시간으로 삼는다는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저자 또한 그런 야핏의 도움을 받는다.
저자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네델란드 사람을 보고 점차 그들을 닮아간다. 외모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
타인의 가치판단보다 나의 가치판단이 우선이 되었다.
이 부분은 공감이 가면서도 좀 아이러니하다. 외국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잘 꾸미고 옷도 잘 입는다며 매력을 갖고 호감을 보인다. 외국인도 그런 부분에 호감을 갖는데 결국 잘꾸민, 아름답고 단정한 외모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호감을 끌어 내는 방법이고 그렇기 위해서 노력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네덜란드의 학장이나 조교도 다들 놀라웠는데, 우리 나라의 틀에 박힌 수직적 위계질서보다는 좀 더 효율적이고 유연하고 다양한 가능성이 꽃피울 수 있는 관계와 상황이 이루어졌다. 학장인 미카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며 학생들의 파티에도 친근하게 참석한다. 조교는 자신의 행동에 불편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개적으로 사과하며 학생들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그러한 유연하고도 겸손한 태도가 참 멋졌다.
유학생활 이야기가 쭉 진행되다가 급격히 다큐멘터리 이야기로 집중된다. 유학 1년차에 집필을 하다가 2년차인 졸업 즈음의 이야기는 거의 담기지 않았다고 저자도 말했다. 그 부분은 졸업 작품으로 담았으니 과정의 전부가 기록된 것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이야기 방식'으로는 매우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독자들은 그녀의 유학생활과 새로운 경험들을 함께 경험하고 발맞추어 진행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유학 생활은 접고 졸업 작품으로 모든 것을 끝내겠다 하는 것은, 공부 외의 중점적으로 다루어졌던 그녀의 동기들과 생활과 적응, 발전에 대한 흐름을 끊어버려 맥락이 없이 흐려져버린다.
이런 에세이류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얼마전에 읽었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까. 독자들이 저자의 생각, 삶, 발전에 진심으로 응원을 보내고 앞으로의 행보를 쭉 함께 지켜보고 싶은데, 저자는 딱 끊어내며 난 여기까지! 하고 독자들이 바라는 완결을 보여주지 않는다.
불편한 점은 다른 여기저기에서도 또 느껴진다. 특히 진보적인 여러 이슈들에 대한 점에서 그렇다. 페미니스트 집회에 대한 부분에서 상당히 불편했다.
드디어 차도를 검거했다. 누군가는 불편할 터였지만 그들이 불편함을 깨닫는 것 자체가 이 집회의 목적이었다. 여성은 단지 성별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평생 불편함을 겪어왔으니 말이다.
진보적인 투쟁 때문에 많은 인식과 상황이 발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다만 자신이 그랬다고 다른 사람까지 불편함을 깨달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다. 예를 들어 건당 수익이 나는 택배 기사의 경우 일 분 일 초가 바쁜 한 가정의 가장이 차도를 검거한 페미니스트때문에 돈을 덜 버고 여러가지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면, 그들의 손해난 시간과 노동은 어디서 어떻게 보장 받을 수 있다는 걸까. 내가 이랬다고 니들도 이래봐라, 하는 목적으로 집회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이기적이며 퇴보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의 임신중단도 그랬다. '임신중단' 이라는 단어 자체가 낙태보다 거부감이 들었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누군가에게 낙태는 이야기 하기 싫은 상처이자 아픔일 수 있다.
여러가지 생각들을 할 수 있고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보통사람(일반인)/그렇지 않은사람(농인,동성애자,페미니스트,전쟁피해자)의 이분법에 대한 정의와 의미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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