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셔츠 / 존 스칼지
폴라북스 / 리디북스
추운 날에는 따끈한 이불 안에서 책을 읽는 것만큼 행복하게 보내는 방법도 없을 것 같다. 강아지들을 양쪽에 끌어 안고 나에게 행복하고 따뜻한 시간을 주었던 책!
존 스칼지에게 2013년 드디어 후보에만 오르다가 휴고상을 안겨 준 소설. 레드셔츠.
※책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레드셔츠’란 SF계의 유명한 클리셰로,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미국문화의 한 축을 지배하고 있는 TV 시리즈 《스타 트렉》에서 주인공들(푸른 셔츠를 입은 고위직 승무원들)과 함께 원정에 나섰다가 죽어버리는 엑스트라를 일컫는 말이다.
아무런 정보를 없이 소설을 처음 접하자마자 느낀 것은 문장 곳곳에 묻어 나는 스칼지의 유머였다. 노인의 전쟁에서 나를 하염없이 매혹시킨 스칼지식의 유머가 이 소설 전반에 넓게 퍼져있다. 사실, 소설을 보고 작가에 대해 추측하기란 대단히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소설 속의 주인공과, 소설의 주인공이 한 말이 전부 작가의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칼지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그의 따뜻한 시선과 유머러스함이 느껴진다. -스티븐 킹의 소설도 그렇다. 그 괄호안의 부가적인 설명들을 읽다 보면 작가에 대한 친근감이 든다. 이 책을 읽고 있던 나의 반응을 단순하게 그려보자면...
초반 : 오오~ 흥미로워!
초중반 : 우아와아앙? 진실은 무엇인가!!??
후반 : 뭐야, 이 개뼈다귀 같은 황당한 시츄에이션은?
마지막 : (찔끔거리는 눈물을 닦으며) 아놔! 스칼지!!!(긍정적인 의미의)
나는 SF는 좋아하는 편이지만, 배틀스카 갤럭티카를 몇 번이나 보려고 시도했다가 포기한 사람이다. SF소설, 영화 다 좋지만 이상하게도 드라마는 적응을 못하고 손을 놨다. 물론 한국에서 SF드라마가 - 스타트랙 같은 드라마를 만든다면 모르겠지만(그럴리 없겠지만 ㅋ) 이상하게 타국의 SF 드라마는 취향을 살짝 벗어나서 못 보겠다만...스타트랙이나 다른 미국의 SF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훨씬 재미있게 읽힐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처럼 드라마에 전혀 무지하더라도 얼마든지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다.
주인공인 앤드루 달은 미래에 살고 있고 우주연맹의 인트레피드호에 승무원이 된다. 하지만 인트레피드호에선 무언가 비밀이 있고 특정 인물들과 함께 탐사를 나가게 되면 특정 인물을 제외한 대부분은 죽게 된다. 진실을 찾아가던 달은 자신들이 TV 드라마인 인트레피드호에 등장하는 조연배우-언젠가는 혹은 다른 에피소드에서 죽게 되는-임을 알게 된다. 달과 친구들은 현대의 세계로 블랙홀을 따라 이동을 하고, 인트레피드호의 연대기 시나리오 작가와 제작자를 찾기 위해 애쓴다.
당신이 우리한테 주는 죽음은 이야기 전개와는 아무 관련이 없어. 그저 광고 시간에 앞어 시청자들에게 작은 충격을 줄 뿐이고, 첫번째 광고가 화면에서 사라질 때쯤이면 이미 시청자들은 우리의 죽음을 기억도 못 해. 우리의 삶도 의미가 있었어. 닉. 우리에게만 의미 있는 삶이었다 해도 말이야. 그런데 당신은 우리한테 진짜 개죽음을 줬어. 가치 없는 개죽음.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이런 황당한 상황에 적응이 안되고, 맥이 빠져 잠시 재미가 반감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차근차근 이야기를 따라가고 마지막 세 개의 코다를 만나는 순간, 우리가 흔히 스쳐 지나갔던 많은 것들이 어떤 시선과 관심을 주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흔하게 죽어가는 레드셔츠들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새롭게 구성한 이 이야기에서 존 스칼지의 기발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의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도 곳곳에 느낄 수 있다.(물론 유머는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
그냥 이 계획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 만약 정말로 성공한다면,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딱 하나 있어. 이제 뭔가를 해봐. 되는 대로 사는 건 그만둬. 대충 간만 보다 싫증 내는 짓은 그만해. 한심하잖아. 넌 삶을 낭비하고 있어. 지금껏 인생의 대부분을 허비했지. 내가 너를 찾아온 건 너에게 행운이야. 하지만 내 예감으로는, 이런 일이 두 번 일어나지는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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