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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1) 미스터리,스릴러,추리,공포

노조키메 - 미쓰다 신조

by DORR 2020.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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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키메 / 미쓰다 신조 

북로드 / 리디북스 

 

 

 

어느 순간부터 일본 문화에 흥미를 잃었지만 그럼에도 일본의 추리 소설과 미스터리, 공포, 스릴러 쪽은 워낙 방대하고 수가 많아서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막상 읽어서 만족스러움을 주는 책은 많지 않다. 이미 검증된 히가시노 게이고나 요코미지 세이시 같은 작가의 작품 아니고서는 만족함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항상 만족감을 주는 작가가 있었으니 바로 미쓰다 신조다.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 대여로 책을 읽으며 나름대로의 일본 불매 운동(?)을 하고 있지만 미쓰다 신조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검은 얼굴의 여우란 책에서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일제 시대의 강제 노역을 비판 의식을 갖고 바라보는 점에서 더욱 저자를 신뢰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뢰의 바탕에는 지금껏 읽은 그의 소설이 주는 큰 만족감이 있다. 

 

가장 처음 본 책은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이었다. 사기리와 점 6개로 표현하는 복잡한 표현 방식과 분명 미스터리 소설임에도 굉장히 무서운 분위기를 잘 살려내고 묘사를 한다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추리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특유의 집중적이고 현실적이고 몰입도 높은 묘사로 '공포'를 느꼈다. 

 

그런가 하면 괴담의 테이프나 흉가, 화가 같은 집 시리즈로 순수 공포 소설도 즐거웠다. 

 

노조키메는 딱 그 중간쯤이라고 해야 할까. 

 

저자는 이 책에 실린 두 가지의 이야기를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이(픽션이 아닌 논픽션 느낌이라 더 무섭다.) 노조키메에 대한 괴담을 두 가지를 엮었다. 하나는 초등학교 교사인 토쿠라 시게루란 사람이 직접 겪은 일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겪은 무서운 체험에 대한 이야기다. <엿보는 저택의 괴이>이다. 또 하나는 나구모 케이키란 자에게서 들은 민속 연구자인 아이자와 소이치의 미발표 자료노트에 노조키메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나구모 케이키는 이자와에게서 노트를 노리고 그에게 접근해 결국 노트를 뺴돌린다. 그것을 '나'에게 보내지만 나는 유혹을 이겨나고 아이자와 소이치에게 편지를 써서 그에게 돌려 보낸다. 그에게 감사의 편지가 오고 5년후 아이자와 소이치가 죽고 나서 그의 유품인 자료노트가 나에게 도착한다. 그곳에 적힌 청년 시절의 아이자와 소이치의 체험담이 <종말 저택의 흉사>이다. 그리고 경고를 한다. 누군가의 기척과 시선이 자꾸 느껴진다면 책을 그만 읽으라고. 

 

<엿보는 저택의 괴이>는 시게루가 K리조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비슷한 대학생 그를 포함 넷과 함께 일하게 되는데 바쁜 시기가 지나고 아르바이트가 한가해질 무렵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다는 나시라즈 폭포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카즈요가 모녀 순례자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지도에 나타나있지 않은 숨겨진 촌락을 발견하게 된다. 그 촌락에 다가간 그들은 무덤과 사당의 잔해를 발견하고 누군가 그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나서도 시선은 계속 되었고 네 명의 대학생 중 유타로와 카즈요가 죽고 기도사의 도움을 받아 사이코와 시게루는 무사했고 사귀는 사이가 되었지만 시게루는 곧 사이코와 헤어졌다. 그녀가 가만히 그늘 뒤에서 그를 엿보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종말 저택 이후 50여년 이후의 이야기다. K리조트는 소나이쪽 지역 쪽에 있었을 것이라 예상된다. 간략한 줄거리만을 적었지만 처음엔 기묘하고 호기심이 생기다가 촌락 이후는 무섭다. 점차 묘하게 변하는 유타로와 카즈요도 그렇고 '누군가의 시선'은 굉장히 집요하고도 무섭게 나타나 이 책을 읽고 있다가 씻는 도중에도 자꾸 생각이 났다. 직접 읽어 보아야 이런 부분을 자세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종말 저택의 흉사>는 앞서 언급했듯이 아이자와 소이치의 경험담을 기록한 것이며 그가 민속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시절 친하게 된 사야오토시 소이치를 만나게 되며 그가 출생한 토무라이 지역과 사야오토시 가문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시작 저택으로 토다테 가문과 종말 저택의 사야오토시 가문, 그리고 로쿠부의 모녀 살해가 전설로 전해져오고 있으며  그 화를 달래기 위해 신으로 섬기고 마을이나 순례자의 여자아이를 데려와 빙의체, 시즈메로 삼았다. 그 와중 많은 여자아이들이 죽거나 미치고 그 중 하나는 마을 사람들을 해치기도 했다. 이후 샤아오토시 가문에는 '노조키메'라는 엿보는 괴무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사야오토시 소이치는 그것을 보았는데 10살 전후의 기모노를 입은 단발 여자애의 요사스런 모습이었다고 했다. 이후 사야오토시 소이치는 사망했고 아이자와는 그의

참배와 민속학적 호기심으로 토무라이 지역으로 향한다.  그곳에 도착하자 소이치의 할머니인 코노에 여사의 장례가 행해졌고 우연히 숨어서 장례를 지켜보던 아이자와는 그것을 느낀다. 끔찍한 장레식 후 조린 주지 스님이 소이치를 돕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자주 노조키메를 보게 되고 소이치의 형수인 토키코와 쇼이치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종말 저택의 두 사당에서 공포를 느끼게 되고 그것은 자꾸 그의 곁에서 머물며 나타나지만 사이오토시 가문의 누구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던 중 소이치의 아버지인 기이치가 죽고 어머니인 노리코도 죽는다. 모두 배 부분이 뒤틀린 채 기이한 모습으로 죽었다. 돌아가기로 결힘한 아이자와가 자고 일어났을 때, 그의 머리맡에는 고비나물처럼 생긴 기묘한 덩굴 형태의 식물이 놓여 있었다. 그가 식사를 하기 위해 방으로 갔을 때 상을 펴 놓은 세 사람, 소이치의 형인 칸이치와 그 아내 토키코와 쇼이치도 모두 죽어있었다. 뿐만 아니라 유모와 하녀, 고용인들도 모두 쓰러져 죽어있었다. 아이자와는 그것이 덩쿨 형태의 식물이 독초라 모든 가족을 죽였을거라고 예상했다. 자신의 머리맡에 그 식물을 놓아서 경고를 한 것이라고. 종말 저택의 앞에 순경이 오고 조린 주지를 찾자 그도 죽었다고 했다. 아이자와는 뒤쪽으로 돌아가며 가족들이 열지 말라고 당부했던 작은 사당 문을 열어 버린다. 그리고 그는 로쿠부 고개를 넘어 도망간다. 그렇게 노트는 끝이 난다. 

 

****스포일러****

두 번째 종말 저택의 흉사는 앞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앞 이야기가 순전히 공포만을 다루었다면 종말 저택의 흉사는 이 저택의 끔찍한 흉사가 귀신이나 노조키메가 아닌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물론 예상이다) 4년 전 순례자 모녀를 맞아서 어머니는 큰사당(순령당)에 지내게 하고 인질로 딸을 사야오토시 가의 '지사이-재앙으로부터 지키는 주술-로 모든 앙화를 떠맡는 역할을 부여한다' 삼는다. 그것을 행했던 것은 조린 주지이다. 어머니는 점차 병이 생겨 약해졌고 소녀의 존재를 토모라이 촌의 모든 사람들은 무시헀다. 아이자와가 장례식에 본 것도 실제 살아 있던 이 소녀로 이 아이는 자유롭게 마을과 저택을 오가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그 아이를 보면서도 보지 못한 듯 행동한다. 그러다가 소녀의 어머니가 죽고 소녀를 묶어두기 위해 연극 배우 출신 코노에 할머니가 죽자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 소녀는 복수를 결의한다. 기이치와 노리코를 죽인 소녀는 이제 한 번에 독초로 종말 저택의 사람을 죽인다. 그리고 작은 사당으로 숨은 그녀를 아이자와가 발견하고 데려와 자신의 아내로 삼았을 것이다라는 것이 추측의 내용이다. *

***

 

추측이 난문하고 썩 완전하지 않고 아리송하지만, 공포와 미스터리를 잘 융합해 즐거웠다. 사람의 취향이 각각 다르겠지만, 호러와 미스터리를 둘 다 좋아한다면 색다른 느낌에 좀 더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일본의 공포는 우리나라의 공포와는 조금 다르다. 우리 나라는 원인과 결과가 확실하고 기승전결이 뚜렷하다. 그러한 면에서 재미는 있지만 공포는 조금 떨어진다. 일본의 공포는 모호하며 불특정 다수에게 닥친다. 죄를 짓지 않고 찔리는 것이 없다면 다소 안전할 수 있는 한국의 공포 주인공에 비해 일본의 공포 주인공은 특정 장소, 특정 상황, 특정 물건에 의해 우연적으로 랜덤하게 공포와 화(禍)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다보니 결말도 이도 저도 아니게 모호함만을 남기며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좋다.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생각과 비슷한 생각이다. 물론 완성도 높고 완결성 좋은 재미있는 공포를 더 선호하긴 하지만, 그래도 무섭고 재미있다면야. 


당시나 지금이나 괴담에 대한 나의 자세는 같았다. '아, 무서웠다......'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 이야기에 대한 해석 따윈 조금도 원하지 않는다. 하물며 '사실은 이런 인과응보가 있어서'라는 식의 설명 따윈 전혀 필요 없다. 괴이한 일은 어디까지나 영문을 알 수 없는 것으로서 그 상태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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