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 / 제바스티안 피체크
위즈덤하우스 / 리디북스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확실하게 경험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면. 정확히는 타인이 그 모든것이 너의 환상과 착각이다. 네 잘못된 것들(정신병, 알콜중독, 마약중독 등)로 인한 현실이 아님을 현실로 인식한다고 한다면.
독자의 입장에서 이와 같이 답답한 상황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답답한 상황은 굉장한 긴장감도 안겨준다. 이러한 주인공(대부분 여자)의 입장과 상황이 맞물려 긴장감을 느끼게 해주었던 소설들이 있었다. 걸온더트레인이나 우먼인윈도 같은 소설들이 그랬다.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소설 소포도 약간은 그러한 맥락에서 비슷한 느낌을 준다.
주인공 엠마는 어린 시절 폭력적이고 무시무시한 아버지를 대신해 아르투어라는 인물을 그려낸다. 옷장에서 나타나는 오토바이 헬맷을 쓴 남자. 유령. 무섭고도 낯익은 사람.
엠마는 그 이후(6살) 아르투어가 현실의 인물이 아니란 것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성장해서 정신과 박사가 되었다. 남편 필리프와는 행복한 가정 생활을 하고 있고 임신 6개월차이다. 그녀의 남편은 프로파일러, 분석수사관이다. 그녀는 학회에서 강연을 하다가 거짓말을 한다. 남편은 집에 없고 르젠 호텔 1904호에 머무른다. 뉴스에서는 요즘 떠들썩한 이발사 살인마에 대한 뉴스가 흘러 나오고 욕실로 간 그녀는 욕실에 남겨진 '도망쳐, 당장!' 이란 말을 보고 깜짝 놀란다. 자신이 비명을 질렀는지 모르는데 한 러시아 매춘부가 다가와 그녀를 걱정했다. 러시아 여자가 떠난 후 잠을 청하는 그녀에게 호텔에서 전화가 온다. 체크인을 하겠냐는 질문이다. 그녀는 이미 1904호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지만 호텔 측은 1904호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고 주사를 맞은 그녀는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 자신이 강간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6개월 후, 엠마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오랜시간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법학교수이자 변호사인 콘라트와 상담을 한다. 그녀는 살인죄로 기소되어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있었다. 깨어난 그녀는 콘라트의 사무실에 있었다. 익숙한 공간이다. 콘라트는 대학생 시절 그녀가 베네틱트라는 남자와 교제할 시 그가 그녀에게 폭력을 썼고 헤어지자 협박을 하고 미행했다. 콘라트가 나서서 법률적인 문제와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무시무시한 아버지 대신 그녀에겐 항상 믿음직한 남자였다. 엄청난 나이 차이임에도 엠마는 그에게 끌렸지만 그가 동성애자라는 비밀을 그녀에게만 털어놓자 둘 사이는 더 각별한 친구가 되었다.
6개월 전, 이발사에게 강간당한 그녀는 머리카락이 전부 밀렸다. 이후 그녀는 편집증과 망상과 여러가지 정신적인 문제를 겪게 되었다. 경찰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심지어 남편까지도. 이발사의 피해자들은 전부 에스코트걸들이었고 머리가 전부 밀린 채 살해되었다. 살아 남은 것은 오직 그녀 뿐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묵었고 범죄 현장이었다고 하는 르젠 호텔 1904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버스 정류장에서 발견 되었다. 성폭행 흔적이나 정액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6개월된 그녀의 아기를 잃었다.
남편 필리프는 그녀에게 삼손이라는 허스키를 선물해줬고 삼손과 함께 그녀는 6개월 사건 이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3주전 그녀에게 온 소포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콘라트는 그 3주전 사건에 대해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3주전 사건 이후로 그녀는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다. 경찰도 가족도. 결국 콘라트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편안히 그녀에게 모든것을 말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녀는 3주전 그 소포와 함께 생긴 끔찍한 사건을 이야기했다.
소포는 옆집 사람 A.팔란트에게 온 것이었다. 배달부 살림이 삼손에게 간식을 주고 오늘로 배달일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그녀는 남의 소포를 대신 받는 것이 끔찍했지만 마지막이라는 살림에게 팁이라도 주려고 갔다가 이발기 광고지를 보고 기절해버린다. 그녀가 깨어나고 위층에서 이상한 벨소리를 듣는다. 또한 소포가 사라진다. 삼손이 피를 토하고 아프자 그녀는 처음으로 집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를 하지만 그것은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겨우겨우 집 앞 5분거리 동물병원에 삼손을 맡기고 돌아오던 그녀는 옆집 팔란트의 집에 몰래 갔다가 핸드폰을 두고 온다. 그리고 판란트의 집에서 그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토막 시체를 발견한 그녀는 남편 필리프가 보는 앞에서 판란트를 몇 번이고 찔러 죽인다.
하지만 판란트는 이발사가 아니고 그의 집에서 나온 시체는 판란트의 자연사한 어머니었다. 암으로 모르핀에 중독된 그는 어머니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연금을 받았던 것이다.
엠마의 친한 친구인 실비아는 그녀에게 전화해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지하실에서 남편은 없어졌다고 생각한 소포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발사에게 살해당안 여자들의 머리카락이 있었고 내내 카메라로 그녀를 감시하고 있었다. 엠마는 자신의 남편이 이발사임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잡으려던 그를 피해 달아나려다가 그와 다투고 결국 남편의 동맥을 찔러 죽이고 만다. 하루 사이에 두 명의 남자를 살해하게 된 엠마는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갇히게 되며 지금껏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콘라트에게 모든 것을 말한 엠마는 주변이 이상한 것을 깨닫고 정신을 잃는다. 사실 그녀는 콘라트의 사무실이 아닌 파크 정신 병원에 있었다. 마르틴 토트 박사는 정신분열증에 명성 높은 정신과 의사였고 엠마 슈타인의 내면의 장벽을 깨기 위해 콘라트와 함께 그녀의 입을 열고 치료할 수 있도록 장치를 한 것이었다. 콘라트도 남편과 판란트를 죽인 그녀를 변호하기 위해서 그녀의 진술이 필요했다.
****스포일러 주의****
사실 이발사는 콘라트였다. 어린 시절부터 엠마에게 관심이 많던 그는 실제로 엠마의 옷장에 숨어 아르투어라고 말하던 남자였다. 엠마의 엄마에게 주사를 놓아 유산시키고, 바람을 피는 필리프가 만난 에스코트 걸들을 차례로 죽이고 결국 엠마를 강간하고 상처 입힌것도 모두 그의 짓이었다. 게이라는 것도 거짓말이었다. 그는 그것이 모두 엠마를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토트 박사는 엠마 뿐 아니라 콘라트를 잡기 위해 세트를 만든 것이었다. 결국 콘라트는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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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바스티안 피체크, 패신서 23과 차단은 모두 재미있게 읽었었다. 다만 내가 그를 단편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가 시리즈물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사이코 스릴러라고 불리우는 다소 잔혹하고 기괴하기도 한 사건물이 주로 다루는데 내 취향에 굉장히 잘 맞는다. 그의 대표작인 눈알수집가와 영혼파괴자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이 기회에 출간된 그의 책들을 모두 읽어봐야겠다.
사실 우먼인윈도나 걸온더트레인 같은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황의 여성 피해자 혹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사건이 진행되다보니 매우 답답한 구석이 많다. 엠마의 집 밖에 나오지 못하는 모습에 (특히 삼손이 아파서 피를 토하는데!!) 얼마나 갑갑하던지. 하지만 그녀의 편집증 증상과 우울증 증상이 너무 실감이 나서 겪어보지 못한 심정이나 현상이 약간이나마 이해가 갔다. 시야가 좁아지고 넓어지고 울며 겨우겨우 집 밖을 나서는 그녀를 두 손 꽉 쥐고 응원했다.
그녀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없다. 어릴 적 나타났던 아르투어를 비롯해 강간 당하고 아이를 잃은 끔찍한 일조차 그리고 그 일을 저지른 것이 끔찍하고 유명한 살인마라는 것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그녀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자 범죄분석가인 남편조차도. 경찰과 동료들도. 혼자 외롭고 끔찍한 싸움을 해가는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 소포로 끔찍한 사건과 진실을 마주한다.
범인이 살짝 억지스럽지 않나 싶었지만 그마저도 저자의 트릭이 잘 먹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엠마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정신적인 혼란, 자신마저 믿지 못하는 모든 혼돈 상황과 무엇을 믿어야 할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는 반전들, 무엇보다 긴장감 넘치게 흘러가면서도 엠마의 내부와 실제 사건과의 흥미진진함이 굉장히 즐거웠다.
마지막 범인의 말이자 문장은 정말이지 소름끼친다.
사랑해서 그랬어, 오직 널 사랑해서 그 모든 일을 했어.
끔찍한 사건과는 다르게 작가의 말, 피체크의 10년은 매우 훈훈하고 유쾌했다. 어쩌면 이런 끔찍하고 무서운 범죄를 다룬 스릴러 작가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글이라서 더욱 좋았다. 그의 작품을 읽고 감동 받은 사람들의 사연이 소개 되는데 암 말기 환자의 편지와 마약 중독자가 그의 소설을 통해 몰입하고 이겨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이제 오랜 시간 내 책장에서 잠자고 있었던 그의 대표작 눈알수집가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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