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 리디셀렉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웃음 다음으로 두 번째이다. 웃음도 추리 소설 형태를 취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도록 유지하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날 죽였지?
기가 막힌 첫 문장이다. 우리의 주인공 가브리엘 웰즈는 갑자기 죽임을 당한다. 자고 일어나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채 병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영매 뤼시를 만나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되고 받아들인다.
뤼시의 도움을 받아 시체에서 피를 뽑아 검사를 해 본 결과, 그는 안티마이신A 라는 복합물질에 독살 당했다. 뤼시는그의 사망을 조사하는 일에 여러 위험이 따르는 것을 깨닫고 그를 돕기 거부하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로 약속을 한다.
뤼시에게는 사미 다우디라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다. 회사에서 누명을 쓰고 마약 가방을 그녀에게 부탁한 뒤 사라졌는데 누명을 쓴 그녀는 8년간의 교도소 생활을 해야했다. 하지만 그 곳에서 가브리엘 웰즈의 책을 읽게 된 그녀는 그 후로 영매 재능을 깨닫고 영매로 살게 된다.
죽음이 때로는 끔찍하고 살인은 더더욱 처참하게 묘사 되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는 죽어서 생기는 장점을 금세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물론,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묘사하는 죽음 후의 세계는 다소 긍정적이다. 환생을 선택할 수 있고 그것을 원하지 않으면 떠돌이 영혼으로 지낼 수 있지만 그것은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한다. 하지만 작가의 상상과 다르게 죽음 이후의 모든 것은 철저하게 비밀이다.직접 겪어 보지 않는 이상 죽음 이후의 어떤 세계가 있을지 혹은 많은 사람들이 믿는바처럼 그저 무(無)일지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믿음에 달렸다. 그 전까지 우리는 뤼시처럼 살아 있음에 항상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살아 있음에 감사합니다. 육신을 가진 것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존재의 행운을
누릴 수 있는 만큼 이에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살게 되길 소망합니다.
죽음 - 뤼시 필리피니
가브리엘 웰즈도 자신의 죽음으로 후회를 하며 깨닫는다.
아직 시간이 있다고 늘 생각하면서 잘못 살아왔다. 죽음이 닥치고 나니 알겠다.
중요한 일들을 계속 미루기만 하면서 살았다.
죽음 - 가브리엘 웰즈
가브리엘 웰즈는 자신을 죽였을만한 용의자를 찾아본다. 그리고 자신의 쌍둥이 형이자 자신을 질투했던 토마 웰즈와 그의 전 애인이고 배우인 사브리나 덩컨, 그를 끔찍하게 싫어했던 문학 비평가 장 무아지, 그가 죽으면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유명 편집자 알렉상드르 드 빌랑브뢰즈를 뤼시의 도움을 받아 탐색한다.
뤼시는 가브리엘의 도움을 받아 사미 사우디를 다시 만나고, 가브리엘의 수사를 돕던 할아버지 이냐스는 환생을 하고 사미를 다시 만난 그녀도 사미와 함께 하기 위해 가브리엘을 떠난다. 가브리엘은 혼자서 열심히 수사에 힘을 써보고......
진실이라는 것은 결국 관점의 문제일뿐야.
하지만 뤼시가 사미에 의해 위험에 처하면서 가브리엘과 그녀의 과거 교도소 동료 돌로레스는 뤼시를 돕고 뤼시 대신 그녀의 몸에 들어간 가브리엘은 잠시나마 살아 있는 삶을 살게 된다.
세계가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데는 모종의 숨겨진 의도가 있으리라는 걸 기억하라는 말이에요. 실수 없이 앎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해요. 경험은 오랜 시간에 걸쳐 퇴적물처럼 쌓이는거죠. 우리는 누구나 경험을 해봐야해요. 그러고 나서 그 경험의 결과물을 확인해야 비로소 행동을 바꿔야겠다는 자각이 오죠. 그래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돼요.
이야기는 여러 가지를 담고 있는데, 문학에 관한 것도 그 일부다. 가브리엘 웰즈와 장 무아지로 나뉘어지는 나쁜 문학과 좋은 문학의 진영. 문체와 심리묘사를 중시하며 상상력이 아닌 장황한 사실적인 것에 기반한 순수문학을 비판하는 가브리엘 웰즈의 목소리. 개인적으로 순수문학도 좋아하지만 압도적으로 장르 문학을 훨씬 더 사랑하기 때문에 가브리엘의 말에 좀 더 공감했다.
우리는 다 같은 존재들일세, 이야기꾼들이지. 나쁜 문학과 좋은 문학이란 구분은 애당초 없다네. 그저 상상력의 문학에도 문체와 심리 묘사가, 문체를 중시하는 문학에는 상상력과 환상이 필요한 것 뿐일세.
# 스포일러 #
가브리엘은 자신의 죽음, 자신을 죽은 자를 알게 되고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 정체는, (다소 황당하지만) 메트라톤이었다. 가브리엘이 죽던 날 아침, 발간 방울이 달린 귀덮개 모자를 쓰고 푸들을 산책시키던 노파. 그녀가 상위 아스트랄계를 만들고 관리하는 대천사 였던 것! 그의 죽음의 이유도 다소 황당스럽다. 그가 죽기 전에 집필을 완성했던 천년 인간이라는 책이 다루고 있는 평균 수명 연장에 관한 내용과 그의 직관이 지나치게 정확해서 그 책이 출간되면 수명이 연장될 가능성이 높고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위험에서 메트라톤이 직접 그를 죽인 것이었다. (물론 사람들을 조정해서 약물을 주입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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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웰즈는 지구와 그를 아끼는 메트라톤의 허락을 받고 떠돌이 영혼으로 지내며 뤼시를 통해 계속 집필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육신이 이미 죽은 그의 책은 알렉상드르 드 빌랑브뢰즈가 만들어 낸 GWV 인공지능으로 출간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난 삶으로 부터 무엇을 배웠는지를 생각한다.
첫째, 인간의 삶은 짧기 때문에 매 순산을 자신에게 이롭게 쓸 필요가 있다.
둘째, 뿌린대로 거두는 법이다. 남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순 있지만 결국 선택은 우리 스스로 하는 것이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우리가 지는 것이다.
셋째,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는 도리어 우리를 완성 시킨다. 실패할 때마다 뭔가를 배우기 때문이다.
넷째, 다른 사람에게 우리를 대신 사랑해달라고 할 수는 없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다섯째, 만물은 변화하고 움직인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억지로 잡아두거나 움직임을 가로막아선 안된다.
여섯째, 지금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려 하기 보다 지금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유일무이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완벽하다. 비교하지 말고 오직 이 삶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애써야 한다.
죽음 - 가브리엘 웨즈
이 이야기는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죽음이 삶의 대척에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아주 예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에 나왔던 문장과 비슷하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상실의 시대 - 무라카미 하루키
이 소설, 죽음에서도 그러한 부분을 계속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상실의 시대처럼 무겁게는 아니다. 좀 더 즐겁고 흥미롭게, 묵직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침잠하지 않도록 적당한 무게를 유지하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에 대해 그리고 항상 '죽음'이 일부로 존재하는 현재의 '삶'에 대해 환기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은, 이것이다.
나는 왜 태어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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