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턴트 / 임성순
은행나무 / 리디북스
세계문학상 수상작품이라 관심을 갖고 봤던 책 같다. 사놓고 역시나 오랫동안 묵혔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술술 읽히고 재미있어서 놀랐다. 문학상 수상작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다가 깜짝 놀란 작품이었다.
주인공의 직업은 컨설턴트이다. 그가 하는 일은 구조조정이다.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IMF 때의 구조조정이 아니다. 한 사람의 삶을 낱낱이 조사해 죽음으로 몰아 넣는 과정이다. 자의로 죽음을 택하면 좋고 그렇지 않다면 그런 환경을 만들거나 그렇게 보이도록 꾸민다. 추리소설 작가가 꿈이였던 그는 '회사'와 '매니저'를 통해 일을 해내며 엄청난 연봉을 손에 넣는다. 그렇지만 그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죄책감 때문에 일을 그만두지도 않는다. 돈도 많이 벌고 회사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에게 현경이 나타난다. 명품에 대한 또렷한 가치관을 지닌 현경은 명품을 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질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현경에게 매번 명품을 선물하다. 그리고 그녀와 밤을 보내고 만남을 이어간다. 그러다 갑자기 문득 그녀가 그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만나도 데면데면할 뿐이다. 그도 그녀에게 전화하지 않고 그리고 둘 사이는 멀어진다.
그가 이상형의 여인을 만나게 되어 청혼을 결심했을 때, 현경이 그에게 저녁을 먹자고 제안한다. 갑작스러운 일이다. 회사도 그만둔다고 한다. 현경은 그에게 다시 만나자고 한다. 하지만 그는 청혼할 여자가 있다고 한다. 그쯤, 그에게는 회사에서의 테스트가 내려오는데 그것은 아는 누군가를 구조조정 하는 일이었다. 그는 두려워한다. 만약에 그가 사랑하는 이상형의 여인의 구조조정이면 어떻게 되는거지? 하지만 구조조정 해야 하는 상대는 현경이다. 그는 안심하고 현경의 구조조정을 실행한다. 하지만 이 주 뒤 목 메달아 죽기로 되어 있던 현경은 일주일 뒤 강에 투신해 자살한다. 그리고 그에겐 그녀의 유서가 도착한다.
유서를 읽은 그는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콩고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회사'에 대해 깨닫는다.
이 스토리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컨설턴트라는 직업과 회사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주인공이 구조조정하는 과정이 추리소설처럼 치밀하고 흥미로웠다. 철저하게 자신의 일을 행하는 주인공에게 갑자기 나타난 현경과 그의 모든 사항을 꿰뚫고 있던 회사와 회사의 테스트도 매우 재미있었다.
그러나 그가 콩고로 떠나고 나서는 모든 것이 급물살을 탄 듯 변해버린다. 시속 50키로로 천천히 주변 풍경을 감상하고 가던 것이 급작스럽게 120키로가 되면서 정신 없이 달려가 디테일과 주인공의 감정 변화와 여러 가지들이 스무스하지 않고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변해가 버렸다. 단풍이 든 가을 풍경은 정신 차리고 보니 스산한 겨울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단풍을 충분히 즐기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덕분에 이미 쌓인 눈을 감상할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그럼에도 매우 즐겁운 과정이었다. 작가의 다른 책들도 기대가 많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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