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캔디, 불쌍한 꼬마 한스 / 백민석
한겨레출판 / 밀리의서재
저자의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을 읽다가 자전적 소설인 '이 친구들을 보라'를 읽고 몇 번 언급된 불쌍한 꼬마 한스가 궁금해졌다.
꼬마 한스의 이야기는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간 간호사 선애씨로부터 시작한다. 그녀가 이 곳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자 나는 조금 전과 약간 다른 장소, 약간 다른 시간으로 이동하는 전이 상태를 다시금 경험한다. 처음 전이 상태를 겪은 것은 새로 초등학교 저학년, 생긴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창 밖을 바라보았을 때였다. 마치 하늘에 낙서를 해놓은 듯한 '생선가시'를 처음 발견한 날이었다. 사서 선생님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더 크면 알려주겠다고 한다.
나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 전이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도서관 소년이었던 과거와 그곳에서 느낀 전이감이 주된 내용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나는 여전히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 도서관 회원들끼리 소풍을 가서 몸이 좋던 한 여학생의 엉덩이에 얼굴을 깔렸을 때, 하늘에서 다시 그것, 생선가시를 본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전이 현상을 겪는다.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가는 동안에도 또 전이현상을 겪는다. 항상 타는 시간에 항상 타는 버스를 탔지만 도착하니 55분쯤 시간을 앞질렀다. 나는 그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날 나는 상담에 가지 못하고 체력단련장 스탠드의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잠이 들어버린다.
의사는 나에게 꼬마 한스의 이야기를 해준다.
존엄성이란 무엇보다 소중한 거야. 아무리 꼬마 한스라도.
나는 병원에서 자주 보던 특징 없는 여자인 선애에게 말을 걸게 되고 의자에게는 다시 생선가시를 본 이야기를 한다. 초등학생 시절, 2층 테라스에서 생선 가시를 보고 전이감을 겪고 테라스에서 떨어져 병원에서 깨어난 일을 말한다. 생선 가시에 대해 다시 묻자 사서 선생님은 그것이 '새오드링커'라는 현대의 대도시에 나타나며 빌딩숲의 영을 빼앗아 먹는 도시 전설이라고 알려준다.
나는 의사에게 도서관을 떠나게 된 이야기도 들려준다. 소년 치한이 도서관에서 책 뒤에 숨어 딸딸이를 치는 것을 알아챈 순간 이쪽을 들여다 보고 있는 생선가시를 발견했다. 소년 치한에게 달려다가 전이 현상이 일어나 바지와 팬티가 넓적다리 윗부분까지 돌돌 말린 채 있던 소년 치한의 몸 위로 넘어진다. 그리고 사서 선생님이 그 둘을 발견했다. 사서 선생님은 소년 치한과 나의 뺨을 때린다. 나는 선생님에게 묻는다.
"그게 정말 도시에서 태어난 괴물인 게 맞나요?"
선생님은 대답한다.
"너 쪼다야?"
그리고 나는 도서관을 떠난다.
단순하던 책장들이 복잡한 책장들로, 단조롭던 책장들이 다채로운 책장들로- 나는 지나간 시간 동안 있었던 그 변화들을 한데 묶어 부를, 어떤 낱말 하나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찾았다.
나는 이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었다. 책장들은 진화했다.
사실이 아닌 감작적인 진실. 그렇게 도서관을 떠난 나는 다시는 생선가시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전이 현상은 종종 있어왔다.
정신과 상담이 끝났지만 나는 선애씨를 만나기 위해 병원을 종종 갔다. 그녀와 영화를 보다가 3분 전에 보았던 장면이 다시 반복되는 전이 현상을 다시 겪는다. 그리고 그녀에게 전이현상과 그가 보았던 생선가시 이야기를 다 털어 놓는다.
그녀는 그에게 고양이를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그녀를 따라 기숙사로 갔지만 나는 지하층의 고양이를 보지 못한다. 어둠속에 블랙홀 같이 눈만 빛난다는 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고양이를 그녀는 잡기 위해 열심히 따라다닌다. 내가 생선가시를 보고 전이현상을 경험한 것 처럼 그녀는 고양이를 본 뒤 걸음이 빨라졌다고 했다.
나는 생각한다, 그때의 도서관 소년은 자기를 지켜봐줄 누군가의 시선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지켜보다가 '얘야, 뭐 하고 있니'하고 이따금 물어줄 누군가의 친절한 시선이 필요했던 게. 비록 그것이 도서관 창밖의 시선이었더라도. 사람이 아닌, 생선 가시의 시선이더라도.
내가 사랑한 캔디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초기까지 내가 사랑한 '캔디'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현재의 내가 그녀와 포르노를 보며 섹스를 한다. 지금이 몇시냐고 계속 묻지만 아직 11시라는 대답이 반복된다. 마치 캔디와의 이야기에서 "우리,불쌍한"이 반복되듯이. 짧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성인이 된 현재는 묘사나 문체가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소 염세적이고 객관적인 느낌으로 서술하는데 과거의 이야기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진행된다.
나는 캔디의 "칫."하는 웃음을 좋아했다. 나는 캔디를 위해 조지 마이클의 브로마이드를 선물하며 마이클스하우스에 내내 들락거렸다. 동성끼리 이런다는거, 있을 수 없는 일인것 같다는 말에 캔디는 이렇게 답한다.
"칫,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이후 캔디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는 재수를 하며 아르바이트를 한다. 꼬치집과 백화점의 청과물 시장에서 일을 한며 캔디와는 여전히 전화통화, 주말 데이트, 가끔 찾는 여관을 간다.
캔디가 백화점으로 찾아 온 날, 나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인 고릴라의 병원으로 병문안을 간다.
학교가 어떠냐는 나의 질문에 캔디는 희라는 아이가 복학을 했다고, 여자애인데 참 예쁘다고, 눈동자가 푸른 갈색이라고 "그 애는, 여자애야" 라고 한다.
고릴라에게 선물할 11층 코너에서 나는 벨벳언더그라운드의 구하기 힘들었던, 앤디워홀의 사인이 있는 바나나가 그려진 레코드을 발견한다. 그리고 병원에 도착하는 내내 바나나 이야기만 한다. 그리고 바나나 때문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고 그 이후 캔디와 대여섯번 전화만 한다.
대학에 간 나는 총잡이가 되어 시위대의 전투조로 싸운다. 캔디와 사귄지 3년째, 캔디는 전화로 "그래?"라는 말만 자꾸 반복하고 있다. 캔디에게는 아름답게만 보이는 거대한 하얀빛 구름기둥 아래서 난처하고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캔디가 더이상 칫,하고 웃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캔디는 희라는 여자아이와 섹스를 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카페 JIRISAN에서 캔디를 만난다. 캔디는 나를 이제 끝난 첫사랑이라고 한다. 캔디는 캔디가 아닌 다른 무엇이었다. 캔디는 그렇게 해서 죽었다. 우리. 불쌍한.
다소 무미건조한 느낌의 현재의 나는 US WHEELING 1942 앞에 그녀와 있다. 그녀는 캔디의 이야기를 자꾸만 들려달라고 한다.
그리고 그만큼 또 얇아진 그것의 쇠로 된 몸체를 보며, 그 얇아진 만큼의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변화가 우리에게도 또 일어났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 하지만 그 어김없고 끊임없는 붉은 녹들의 침입에 의해, 우리의 US WHEELING 1942도 언젠가는 이 둥글게 일그러지고 약간 무지갯빛이 나며 잘 구별할 수 없는 몇몇 점들로 이루어진 방에서 사라질 것이다. US WHEELING 1942의 나지막하고 졸린 듯한 쇠로 된 몸체는그렇게 단 하나의 유일한 미래 속으로 천천히 굴러갈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사랑한 캔디보다 불쌍한 꼬마 한스가 더 좋았다. 결국은 앞으로 나아가 소멸 해 가는 끝이 보이는 사랑이야기 보다는 기이한 현상에 시달리는 도서관 소년의 성장 스토리가 더 마음을 사로잡았다.
백민석 작가의 문장은 생동감 있고 아름답다. 글을 읽고 나면 한동안 그 안에서 옴짝달싹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확실하고 가슴에 바로 와닿는 무언가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틈이 날 때마다 생각속으로 파고드는 무언가를 준다.
다만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에서도 그렇고 내가 사랑한 캔디에서도 그렇지만, 단어에서 드러나는 여성에 대한 시선이 굉장히 불쾌하게 느껴진다. 갈보년,씨발보지,걸레라는 단어들이 그렇듯. 그의 소설속 많은 여자들은 '선애씨'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성적인 대상이거나(현재의 그녀, 붉은공 여급과 장국영, 캔디의 희) 못된 여자(도서관 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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