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밭 엽기전 / 백민석
한겨레출판사 / 밀리의 서재
백민석이 써내려간 사이코 서스펜스 소설은 어떤 느낌일까. 꼬마 한스와 내가 사랑한 캔디와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에서 느꼈던 날카로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문장으로 이번에는 어떤 느낌을 줄까. 이 책을 골랐던 이유는 그것이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백민석이 만들어낸 괴물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엽기, 맞다. 최근들어 읽은 어떤 스릴러 소설이나 모든 소설보다 잔혹하고 무시무시했다. 아마도 주인공 한창림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심하고 때론 감정적인 한창림의 모습은 지금껏 실제 일어난 사건들로 나타난 이춘재, 유영철, 강호순 같은 사람들이 딱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어 소름끼쳤다.
대부분 스릴러 소설은 수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서술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진실에 다가갈수록 좀 더 흥미진진해지고 긴장감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범인을 찾아 심판 받기 원하는 마음 또한 수사관과 독자의 마음이 비슷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릴러 소설은 수동적인 입장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환경에 따라 휩쓸려가며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러나 범인이 주인공이라면 다르다. 비슷한 범인이 주인공인 소설로, 정유정씨의 종의 기원이 있다. 독자는 묘한 모순에 빠져버린다. 소설 속의 주인공의 감정과 생각에 쉽게 동화되는 독자는 자연스럽게 주인공에게 동화되지만 그렇다고 주인공을 응원할 수는 없다. 그는 지독하고 악랄한 악인인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위험에 빠지고 타격을 입을 때 마다 흠칫 놀라고 주인공이 무사히 난관을 해쳐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나무란다. 주인공이 잘 되면 아무런 죄 없는 누군가가 범죄의 희생양이 될텐데, 어째서 한 편으로는 주인공의 평안이 유지되길 바라는 걸까.
한창림은 시간제 대학 강사이다. 아내 박태자는 마약을 복용하고 있는 조울중 환자로 과외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들의 겉모습은 평범하기 짝이 없다. 티격태격하고 가끔은 진심으로 서로를 미워하는 것 같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속한 부부이기도 하다. 그들은 함께 작업을 한다. 콘티를 짜고 연기를 하고 그 필름을 펫숍의 삼촌에게 판매한다. 필름을 다 찍고 나면 생명이 소멸된 거름을 잔디밭에 묻는다.
이번 타겟은 아내가 과외를 가르쳤던 학생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무언가가 꼬여버린다. 양담배를 피던 회계사와 오장근 형사, 그리고 뷰티플 피플의 언니를 세일하려던 남편까지. 한 번 꼬이기 시작한 사건들은 걷잡을 수 없이 꼬여버린다.
따지고 보면 그와 아내가 이 사회에 끼친 해악이란 엄밀히 말해, 없었다. 그들은 어차피 사회 체계 바깥의 존재인 것이다. 그런 존재는, 제아무리 용을 써도 사회 체계 안의 내용물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칠 수가 없다. 괴물스러운 위력이 얼마나 막강하든, 바깥에 존재하는 한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가 없다…… 그래서 괴물은 장난감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잠들어 있던 괴물을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놓곤, 재미로 쫓아다니며 괴롭히고, 종국엔 괴물이 왔던 곳, 사회 체계의 바깥으로 다시 쫓아 보내는 악취미의 희생물로 전락하는 것이다. 바로 그처럼. 오장근과 펫숍에게 양수겸장을 당한 그처럼. 제이슨도 프레디도 그렇게 놀림감이 되어 죽임을 당했다. 그와 그의 아내가 저질러놓은 것이라곤 예쁘장한 사내아이 몇을 죽여 둔덕에 파묻은 것뿐이었다. 그저 그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건 죄악도 패악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한창림이 아니다. 실제로 이런 공간이 존재할까, 이런 사람이 존재할까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기 짝이 없는 펫숍과 삼촌이란 존재다. 한창림과 박태자를 아주 연약한 존재처럼 보이게 만들었던 펫숍과 삼촌. 특히 박태자의 마지막 모습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익숙하고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물론 괴물 같은 존재라고 하더라도) 순식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하찮게' 사라져 버리다니. 그 마지막에 살짝 연민이 생길 정도였다. (사라져 버렸다는 표현 외에는 다른 표현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끔찍하고 엽기적인 목화밭을 경험하고 싶다면 좀 더 깊이 그리고 가깝게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전형적인 스릴러 수사물이나 서스펜스적인 즐거움을 얻고 싶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플롯과 사건 진행보다는 좀 더 상황과 감정, 생각에 집중되어 있다. 다 읽고 나니 재독을 하는 일조차 내키지 않는다. 음습하고 축축한 목화밭에 한 발 들여놓는 일은, 아무 일 없이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 한다고 해도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일이 될 것이다. (보통 사람의 경우라면. 한창림과 같은 괴물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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