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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4) 철학,심리,과학,인문,역사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by DORR 2020.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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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김영사 / 리디북스 

 

 

10년 전에는 총균쇠가 많은 사랑을 받는 인문서였다면, 최근 10년은 바로 이 책이 엄청난 사랑을 받지 않았나 싶다. 다른 숱한 책들에서 번번히 인용되고 꾸준히 언급되는 책이다. 

 

내용을 들여다 보면 제 1부 인지혁명과 제 2부 농업혁명, 3부 인류의 통합까지 대부분의 큰 흐름은 총균쇠와 비슷하다. 물론 기초적이고 사실적인 내용에서이다. 총균쇠가 구체적인 수치와 통계를 바탕으로 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실들을 추론했다면 이 책은 그 사실을 바탕으로 좀 더 주관적이고 색다른 시각을 나타내기도 한다. 

 


 

인간은 너무나 빨리 정점에 올랐기 때문에, 생태계가 그에 맞춰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인간 자신도 적응에 실패했다.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는 대부분 당당한 존재들이다. 수백만 년간 지배해온 결과 자신감으로 가득해진 것이다. 반면에 사피엔스는 중남미 후진국의 독재자에 가깝다. 인간은 최근까지도 사바나의 패배자로 지냈기 때문에, 자신의 지위에 대한 공포와 걱정으로 가득 차 있고 그 때문에 두 배로 잔인하고 위험해졌다. 치명적인 정쟁에서 생태계 파괴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참사 중 많은 수가 이처럼 너무 빠른 도약에서 유래했다. 


저자는 인간이 최상위 포식자가 된 것은 인간이 유전적으로 혹은 환경에 빨리 적응해서가 아니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원인은 다음과 같다. 

 


가장 그럴싸한 해답은 바로 이런 논쟁을 가능하게 하는 것, 즉 언어다.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덕분이었다. 

 

하지만 우리 언어의 진정한 특이성은 사람이나 사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볼르 전달하는 능력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 직접 보거나 만지거나 냄새 맡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 할 수 있는 존재는 사피엔스 뿐이다.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총균쇠가 앞서 언급했듯이 철저히 숫자와 통계에 입각해 결론을 내렸다면, 확실히 유발 하라리는 조금 더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농업혁명의 핵심은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 하지만 이런 진화적 계산법에 왜 개인이 신경을 써야 하는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호모 사피엔스 DNA 복사본의 개수를 늘이기 위해 삶의 질을 포기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 거래에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그렇다면 왜 사피엔스는 농업을 선택했을까?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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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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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 협력망'에 대해 장미빛 환상을 품어서는 안된다. '협력'이란 말은 매우 이타적으로 들리지만 항상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평등주의적인 경우는 드물었다. 인간의 협력망은 대부분 압제와 착취에 적합하도록 맞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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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어떻게 자신들을 대규모 협력망으로 역었는가? 그런 망을 지탱할 생물학적 본능이 결핍된 상태에서 말이다. 간단하게 답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상상의 질서를 창조하고 문자쳬계를 고안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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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이래 세계 모든 곳의 사람들은 점차 평등과 개인의 자유를 근본적 가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 가치는 서로 모순한다. 평등을 보장하는 방법은 형편이 더 나은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이외에 없다. 모든 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면 필연적으로 평등에 금이 간다. 1789년 이래 세계 정치사는 이 모순을 화해시키려는 일련의 시도로 볼 수 있다. 


농업보다 채집 수렵 생활이 훨씬 행복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주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을 읽다보면 정말 그랬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농업혁명은 쭉쭉 발전을 가져와 산업 혁명으로 이어지고 풍요는 사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불평등을 낳는다.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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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피엔스를 통털어 가장 공감했던 부분이 있다면 바로 행복에 관한 부분이다. 기술이 발전해서 좀 더 편리하고 환경을 바꾸는 힘은 커졌을지 모르지만 수많은 개인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는 저자의 주장에 100% 공감했다.

 

더 부유해지고 더 건강해지면 행복할 것이 틀림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정말 그렇게 명백한 일일까? 행복에 대해 일반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의는 '주관적 안녕'이라고 말한다. 내 속에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외부에서 측정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저자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흥미로운 결론 중 하나는, 돈이 실제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까지만이며, 그 정도를 넘어서면 돈은 중요치 않다. 또 다른 흥미로운 발견은 질병과 행복의 관계다. 질병이 단기적인 행복감을 낮추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행복감을 낮추는 감소시키는 것은 두 가지 경우뿐인데, 하나는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병이 사람을 쇠약하게 만드는 지속적인 고통을 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행복이 부나 건강, 심지어 공동체 같은 객관적 조건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당신이 손수레를 원해서 손수레를 얻었다면 만족하지만, 새 페라리를 원했는데 중고 피아트밖에 가지지 못했다면 불행하다고 느낀다. 복권 당첨이든 끔찍한 자동차 사고든 시간이 지나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비슷해지는 것인 이 때문이다. 사태가 좋아지면 기대도 부풀게 마련이라, 객관적 조건이 극적으로 좋아져도 불만일 수 있다......인간의 기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은 행복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우리는 다른 사람이 현재 얼마나 행복한지, 혹은 과거의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추측하고 상상하려 할 때 우리 자신을 그들의 상황에 대입해본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정확하지 않다. 우리의 기대를 타인의 물질적 조건에 끼워넣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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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은, 행복이란 불쾌한 순간을 상쇄하고 남는 여분의 즐거움의 종합이 아니라, 그보다는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행복에는 중요한 인지적, 물리적 요소가 존재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아기 독재자의 비참한 노예'로 볼 수 있고, '사랑을 다해 새 생명을 키우고 있는 사람'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그 큰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가치체계다. 니체가 표현한 대로, 만일 당신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 


아주 과거의 역사부터 인지 혁명과 산업 혁명을 거쳐 과학 혁명, 산업 혁명, 그리고 행복의 의미를 묻고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곳은 우리의 종말이다. 나날이 발전하는 생명공학, 유전공학, 사이보그, 유전적 프로그래밍, 브레인 프로젝트 등등의 미래 기술과 이에 관련된 윤리적인 측면을 설명한다.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역사의 다음 단계에는 기술적, 유기적 영역뿐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정체성에도 근본적인 변형이 일어나리라는 생각이다. 


굉장히 길고 어찌보면 복잡하고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내용일지 모른다. 그냥 문자 그대로 따라 읽어가면 그닥 어렵지 않을 수 있지만 내용을 깊이 음미하고 찬찬히 읽어 가며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나 사상과 역사관, 가치관과 충돌하며 읽다보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기도 하다. 

 

전혀 생각치도 못한 생각을 하게 해주며(당연히 발전된 사회의 편안한 환경을 누리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을까 했지만, 저자의 주장을 듣다보면 정말 수렵, 채집 생활을 할 때가 더 행복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수렵, 채집 생활이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삶이라고 하지만, 현재는 모든 것이 잘 되있고 편리하고 좋아도 매일매일 자살하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고 있지 않으니 글세......) 종교적인 내용에서는 너무나도 견해가 달라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를 읽을 때처럼 굉장히 피곤했다. 그런가 하면 행복에 관한 부분은 평소에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그에 대해 완벽하게 정리를 해둔 것 같아 매우 공감했다. 그리고 생각해보지 못했던 사피엔스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서 그 또한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무언가 확인하고 생각해보고 되짚어 보고 알아간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책이 아니었나 싶다. 시간을 두고 다시 읽어보면 좀 더 새롭고 생각하고 배울 것이 더 많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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