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세계사 / 유시민
돌베개 / 밀리의 서재
올해 말에는 역사에 대해서 공부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읽기로 한 것이 통세계사 시리즈다.
그러나 아직 읽어야 하는 다른 책들에 치여서 막 앞부분을 N번째 읽고 있다. 마침, 베스트셀러로 등장한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유시민이라는 저자가 장관을 했었다는 사실(대충 정치인이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 책을 처음 출판한 것이 88년도로 엄청나게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였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이 책을 저술했을 당시 신분이 대학생이었다는 점도 놀랍다.
냉전의 종말과 시대의 흐름과 군부정치의 억압속에서 가슴이 뜨겁고 열정이 반짝반짝 빛나던 청년이었던 저자의 청년 시절 모습을 그려본다. 누구나 그런 모습이 있었을텐데 어째서 이 나라 정치는 이토록 발전이 없고 자신들의 이익에만 집착하는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생각한 부분은 '인간은 악하다'이다. 사회주의 이론이 이상(理想)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을 실행하는 자들이 이상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만 보아도 인류라고는 아담, 하와, 카인, 아벨 이 넷 뿐이었을 때에도 단 하나뿐인 형제를 질투하고 살해한 것이 인간이다. 이론과 방법론이 얼마나 뛰어난지 몰라도, 인간의 악함을 염두해 두지 않은 이론은 말 그대로 이론으로 끝날뿐이다. 악한 인간들이 권력을 갖고 혹은 악하지 않더라도 부와 권력을 갖게 되면 악하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힘을 갖은 자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권익을 위해 타인과 민중을 혹은 질서와 규율을 무시했다. 인간의 악함과 이기적인 탐욕등을 배제한 마르크스의 이론은 현실성이 없었다. 사회주의 체제아래에서 혜택만 취하고 의무를 하지 않는 일반적인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탐욕을 말하기에 가장 좋은 예시는 제국주의가 아닐까 싶다. 우리 나라는 지리적인 여건상, 침략하기 보다는 침략을 당해왔다. 해서 산업혁명으로 인한 유럽의 부의 축척과 동인도 회사, 제국주의까지 이어지는 그 탐욕의 손길에 대해 객관적으로 느끼지 못했었다. 제국주의하면 유럽보다는 일본의 식민지배가 먼저 떠오르니 말이다. 유럽의 제국주의도 끔찍했지만 일본의 악랄하고 끔찍한 착취와 학대에는 비할바가 아닌 것 같다. 우리 나라의 모든 자원을 착취하면서 학살, 인체실험, 정신대 등등 인류적인 측면에서도 해서는 안 될 온갖 죄악들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부분은 사라예보 사건, 즉 1914년 사건부터 일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즉 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전체적인 흐름을 잡고 있지만, 챕터를 나누어 한 가지 사건을 집중적으로 서술하며 흐름에 따라 주제와 사건을 옮겨가는 방식이다. 서양, 동양 구분하지 않고 세계사로 통털어 서술하지만 각 나라의 세세한 상황이 아닌 전체적인 흐름에 맞춰 진행해간다.
가장 좋은 부분은 사실만 쭉쭉 나열하는 방식이 아닌 이야기 형식으로 접근하는 점이다. 중심 인물, 혹은 중심 사건을 축으로 이야기를 하듯이 사실들을 엮어나간다. 아무래도 일렬로 쭉 이어지는 사실 나열보다 훨씬 읽기 즐겁다. 표절에 짜집기라고 하지만, 참고한 문헌을 전부 고지하고 적절히 발췌해서 편집하여 좀 더 독자에게 좀 더 쉽고 즐겁게 지식을 전달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난 역사서를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읽어본 적이 없었던터라 좋았다. 정치인 유시민은 잘 모르겠지만, 저자로서 유시민은 충분히 훌륭한 것 같다. 물론 그래서 그의 저서가 매번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이기도 할테다.
객관적으로 사회주의는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 현대의 시각이다. 저자는 그러한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많은 국가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또 모르겠다. 저자의 말처럼 18,19세기에는 이러한 국가체제의 변화가 다가올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었고, 과학과 바이오산업, 우주산업이 발전하게 되면 또 어떠한 세계가 펼쳐질지 '우주의 시간'속에 찰나와 같은 짧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2021년의 우리는 알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흥미있게 보았던 부분은 베트남의 호치민이다. 우리에게는 여행지로 유명한 호치민이란 지역이 혁명가인 호치민(응우옌신꿍) 초대 주석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개명했다는 점도 그렇고 그가 모든 인생을 베트남의 해방을 위해 싸왔다는 부분에서였다. 물론 저자의 시선이 편향적일 수 있지만, 베트남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처럼 중국의 침략을 지속적으로 막아내며 제국주의에도 대항하고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승리를 이뤄낸 점이 인상 깊었다. 이 부분은 다른 책들을 통해 혹은 다른 역사서를 통해 좀 더 객관적으로 살펴봐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또 매우 찡하고 감동스러웠던 부분은, 마틴 루터 킹의 연설 부분이었다.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나의 벗들이여, - 어제와 오늘 우리가 고난과 마주할 지라도, 나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아메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 내린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솟아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옛 노예의 후손들과 옛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불의의 열기에,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는 저 미시시피주 마저도,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로 변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 1963.8.28 링컨 기념관
실질적으로 단일 민족에 가까운 우리나라에서 인종 차별은 딱히 이슈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국민적인 성향이 포용적이 넓고 너그러워서가 아니라 지금도 한(韓)민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였다.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 앞으로 지켜봐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여튼, 해외에서도 동양인이라고 인종 차별을 받는다는 뉴스나 이야기들에 우리는 화를 내고 분노한다. 하지만 직접 미국 시민으로 살아가면서 '분리하지만 평등'이라는 말도 안되는 상황속에 살아온 흑인들은 어땠을지. 정말 재미있게 봐서 세 번쯤 본(내가 세 번 넘게 본 영화는 정말이지 극히 드물다) 영화 히든 피겨스에도 그들의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나도 여전히 멀었다. 러닝맨에서 흑인의 인권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라는 문제가 나오자 마틴 루터 킹 보다는 링컨 대통령을 먼저 떠올렸으니 말이다. 나와 우리의 무의식속에 백인 우월주의가 깊이 박혀있는지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오랫동안 헐리우드를 비롯한 그들의 문화 컨텐츠를 마음껏 즐겼으니 말이다)
2020년을 지나고 있는 지금,
앞으로의 역사는 또 어떻게 변해가게 될까. 첨단 산업과 통신은 지구촌을 지금보다 더 촘촘하게 만들 것이고 우주 과학의 발전으로 우주 여행이 가능하고 은하간 소통이 가능해져서 다른 외계인과 외계인류를 발견하게 된다면 지구는 국가보다는 행성 권역으로 묶이게 될지 모른다. 아직은 머나먼 SF같은 이야기지만, 스타 크래프트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세상이 올지 모른다. 지구를 벗어난 테란 연합이 우주 곳곳에 자신들의 연합세력을 키우고 지구 연합과 싸우게 되는 날이 올지도. 인간이 워낙 탐욕적이고 악하여 더 좋은 행성과 행성 자원을 놓고 싸울지도 모른다. 제국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은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좋았으며, 이 책에서 발췌한 혹은 소개한 다른 여러 책들에도 관심이 간다. 특히,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의 경우에는 꼭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다. 독서 모임이나 친구와 함께 읽거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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