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마릴리온 1,2 - J.R.R 톨킨
실마릴리온 1,2 / J.R.R. 톨킨
씨앗을뿌리는사람들 / 리디북스
반지의 제왕을 처음 만난 것은 영화로 개봉되기 2년 전쯤. 친한 친구가 열심히 읽고 있는 책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이다. 하지만, 친구가 정말로 정말로 재미있다며 빌려준 책은 초반부터 생뚱맞은 단어들과 생소한 발음에, 복잡하기만 했다. 아마도 호빗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장을 대충 넘기며 읽어보려고 해도 뭔 말인지 알아먹을 수 없고 대충 넘겼다. 그리고 반지의 제왕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그 영화에 열광한 다른 수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극장에서 반지의 제왕을 보며 정말로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리디북스에서 구입한 톨킨의 책 시리즈를 읽기 시작한 것은 호빗의 세 번째 영화가 나올 때쯤이었다. 호빗 뜻밖의 여정을 읽다가 이왕이면 시작부터 읽자고 해서 실마릴리온을 읽기 시작했는데...
맙소사. 알루타바르와 발라들이 나오는데 발라들도 하나 둘도 아니고 수 열몇 명이 한꺼번에 나온다. 거기서 포기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연말이라 방송하는 반지의 제왕을 다시 보며 다시금 실마릴리온에 도전했다. 어떻게든, 등불의 시대를 넘기고 발라들의 이름에 익숙해지는 순간, 오마이갓.
이번엔 첫 번째 자손, 요정들의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발라들은 장난일 정도로 수많은 요정들의 이름이 나온다. 요정들뿐인가... 복잡하기 짝이 없는 지역들에. 같은 요정도 요정어, 인간어, 발라들의 말들에 따라 여러 가지 단어들이 붙는다... 맙소사.
결국, 리디 페이퍼로 책을 읽으며 태블릿과 핸드폰까지 동원해서... 핸드폰에는 발라들의 이름들과 마이아들의 이름들, 후에는 요정들의 이름들까지 순차적으로 적어가고 태블릿으로는 엘프들의 가계도를 확인하고, 모르는 단어를 검색해가며 그렇게 읽어갔다. 그래서 1권 중간을 읽는 데만도 며칠이 걸렸다. 하지만, 태양의 시대가 오고 인간들이 출연하기 시작하자 수많은 새롭게 등장하는 수많은 인간들의 이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속도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결국 어제 새벽, 5시가 다 돼서 실마릴리온의 끝, 반지 전쟁에 대한 내용까지 다 읽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실마릴리온의 마지막 장을 덮고나자 정말 전율이라고 할까. 그 거대한 상상력과 치밀함에 놀랍고, 전 세계에 수많은 팬들과 마니아들을 갖추고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반지의 제왕은 실마릴리온의 가장 마지막 몇 페이지에 달하는 간단한 내용이다. 실마릴리온의 여러 사건들을 세세하게 그리자면,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가 수백 편은 탄생할 수 있는 분량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반지의 제왕의 가장 큰 적, 사우론이 사실은 발라들 중 가장 뛰어난 발라인 멜코르(모르고스) 의 수하에 있던 놈이고 사실 사우론 또한 마이아 중 하나였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간달프 또한 마이아들 중 하나였다는 사실에 그래서, 영화의 끝, 마지막 가운데 땅을 떠나는 요정들의 왕과 배에 올랐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신화인 창조주와 신들의 이야기부터 그들의 첫째 자손인 요정들의 가계와 그들에게 걸린 저주가 몇 대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들과 인간들의 출연과 그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암흑의 군주 모르고스와의 대립. 그 와중에 운명에 저항하고 싸우는 요정과 인간들, 그리고 사랑과 질투, 삶과 죽음. 단 두 권이지만 그러한 모든 이야기가 굵직굵직하게 씌어 있다.
그런 끊임없는 시간과 세대의 흐름 속에 변하지 않는 것들이 실마릴리온에 주제처럼 담겨 있는데, 그것은 욕망이다. 실마릴리온과 반지의 제왕 그리고 호빗에까지 쭉- 이어져 오는 하나의 주제. 실마릴리온은 실마릴이라는 보물, 발라들이 만든 빛으로 만든 보물때문에 벌어지는 놀노르 요정들의 비극이 주된 내용이다. 실마릴이라는 보물 때문에 저주를 받고 요정이 요정을 죽이며, 욕망을 품은 본인은 물론 겸손하고 정직하고 신의를 지키며 잘 살아온 다른 선한 요정들과 인간까지도 모조리 비극의 희생양이 된다.
반지의 제왕도 마찬가지이다. 반지라는 절대 권력에 눈이 멀어 많은 사람과 요정들이 희생된다. 그것에 욕망을 품은 대부분은 비극적이 된다. 그래서 가장 삐뚤어지지 않고 가장 이기적인 욕망이 적은 호빗, 프로도가 반지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한 프로도조차 반지 앞에서 욕망에 눈이 멀게 되지만, 결국은 자신을 지키고 모든 가운데땅을 구한다. 미스란디스(간달프)가 예언한 것이 들어 맞는 순간이다.
지혜자들이 떨고 있을 때에 약한 자들에게서 도움의 손길이 오는 법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고 완전한 톨킨의 아르다 세계안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재미. 실마릴리온이었다. 이제 호빗과 반지의 제왕을 텍스트로 전부 읽고 나면, 영화를 보는 재미가 훨씬 더 쏠쏠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J.R.R. 톨킨의 아들이자 아버지의 죽음 후에 실마릴리온을 출간했던 크리스토퍼 톨킨은 그 영화를 무지하게 싫어했다고 하던데...
하지만, 영화 덕분에 이 시작이 복잡하고 어려운 책을 만났으니 피터 잭슨 감독에게 감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