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 칼 세이건
사이언스북스 / 알리딘&리디북스
코스모스는 일반적인 과학 서적과 다르다.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랑을 받으며 명작 소리를 들어왔다.
과학 서적은 대체적으로 과학적인 사실을 '전달'한다. 코스모스도 그렇다. 내용의 대부분이 과학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 칼 세이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과학은 단순히 '과학적 사실'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
좀 더 사유적으로 또는 인간적, 철학적인 시선으로 과학을 바라보고 전한다. 특히 나사의 비시니액이라는 미생물학자의 이야기에서 또렷히 느껴진다. 남극에서 실험 표본을 회수하려다가 절벽 밑에서 시체로 발견된 화성에서의 생명 발견에 무엇보다 열정적이었던 한 학자의 죽음을 그리는 시선은 여느 과학 서적에서 느껴볼 수 없는 감정을 전한다.
생명 현상의 다양성 그리고 그 생명 현상들 때문에 숨겨진 복잡미묘함을 마주할 때마다 사람들은 깊은 외경의 감정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거의 몇 달에 걸쳐 조금씩 읽기 시작한 코스모스의 완독이 끝났다. 오랜 시간이였고 힘든 여정이었다. 특히 초반 서문을 여러번 읽으면서 이 거대한(페이지수를 비롯한 명성과 다른 여러 의미에서) 책을 앞두고 도망가고 싶고 두려웠었다. 과연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읽고 뭔 내용인지나 알 수 있을까, 괜한 허영이자 욕심이 아닐까 온갖 상념이 이 책의 책장을 넘기는 일을 더디게 만들었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상념은 사라지고 좀 더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 물론 과학 서적이다보니 과학적인 설명과 식, 그림, 표가 나올때는 굉장히 긴장해야 했고 나중에는 적당히 내용을 파악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넘겨가며 읽을 수 있었다.
코스모스 다 알다시피 카오스의 반대말인 그리스어다. 질서와 조화를 지키고 있는 우주 또는 세계를 일컫는다. 이 코스모스 여정은 생명에서 우주에서부터 시작한다. 지구와 태양계, 내부 은하계와 빅뱅까지. 그리고 인류 문명사, 진화론, 고대인들과 지구의 생명 발생, DNA, 분자와 원자, 생물학 등을 훑어 내려간다.
코스모스는 우주의 광대함을 조명한다. 보통의 인간이 가늠하기 어려운 200억년이라는 시간과 200억 광년의 거리. 그 안에서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우주의 거대함에 비하면 우리는 어떠한가.
하루 종일 날개짓을 하다 가는 나비가 하루를 영원으로 알듯이, 우리 인간도 그런 식으로 살다 가는 것이다.
7챕터 밤하늘의 등뼈를 보면서 이 책이 주는 상상력과 그 상상력의 끝에 있는 아름답고 경이로운 광경들을 보며 놀라곤 했다. 가령 이런 부분이다.
보츠와나 공화국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쿵 족도 은하수를 그들 나름대로 설명할 줄 안다. 그들이 사는 위도에서는 은하수가 사람의 머리 바로 위에 떠 있다. 그들은 하늘이 거대한 짐승이고 우리는 그 짐승 뱃속에서 산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머리 위의 은하수는 그 짐승의 등뼈이다. 그래서 그들은 은하수를 "밤의 등뼈"라고 부른다. 이렇게 해석을 해 놓고 보면 은하수의 존재 가치가 생긴다. 뿐만 아니라 그 존재가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쿵 족 사람들은 은하수가 밤을 지탱하고 있다고 믿는다. 은하수가 아니었더라면 어둠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우리 머리 위로 우수수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멋지고 재미있는 상상이며 설명이다.
또 이러한 즐거운 상상이 존재한다.
이오니아의 과학 정신이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더라면 우리 - 물론 현재의 우리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세계의 '우리'-는 지금쯤 이미 성간 여행의 장도에 올라 있을지 모른다. 또한 우리가 켄타우루스자리 알파별, 바너드의 별, 천랑성, 고래자리 타우별 등을 향해 쏘아올렸던 최초의 우주 탐사선들은 이미 오래전에 지구로 귀환했을 것이다. 성간 여행을 위한 거대한 우주 탐험 선단-무인 탐사선, 식민 이주선, 거대한 무역선 등으로 구성된 선단-이 지구 둘레의 위성 궤도에서 건조되고 있을텐고 그 우주선들 하나하나에 새겨진 상징물들과 글자들은 그리스 문자로 적혀 있을 게다. 혹시 건조된 첫 번째 우주선의 앞부분에는 정이십이면체의 상징과 함께 "행성 지구에서 온 우주선 테오도로스 호" 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보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다양한 상상력이 뻗어나간다.
그리고 이 책이 80년 즉, 냉전 시대에 집필 되었다는 점, 그리고 세계 대전들을 지켜보았다는 점에서 과학의 발전이 인류를 위협하는 무기가 된 상황을 아주 냉정하고 날카롭게 서술하고 있다.
냉전이 종식되고 전쟁의 위협이 그나마 낮아진 지금에서도 인류는 종말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어리석은 인류는 다른 문제를 통해 드넓은 우주에 속한 아주 작고도 창백한 푸른 점인 지구, 우리의 유일한 터전인 이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다.
얼마전 유럽에서 열돔 현상으로 인한 기이한 폭우를 보아도 그렇다. 자국의 이득, 개인의 이익, 경제적 욕망으로 인해 지구가 어떻게 망가져 가고 있는가를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알고 있어도 외면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주적 시간 척도에서 볼 때 지극히 짧은 시간이겠지만 우리는 어서 지구를 모든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하나의 공동체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하여 지구상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한편, 외계 문명과의 교신을 이룩함으로써 지구 문명도 은하 문명권의 어엿한 구성원이 돼야 할 것이다.
나의 사고력과 문장력으로는 이 책이 전달하는 매력적이고 강력한 힘을 설명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깊은 감동과 즐거움, 새로운 지식과 무한한 상상력으로 무장된 이 책은 올해 내가 읽은 책, 또 지금까지 읽어온 책 중 최고가 아니었나 싶다.
반복해서 설명하는 넒고 거대한 우주라는 이 코스모스에서 우리와 나의 존재 가치,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저절로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